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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써보고 싶었던 삼국지 인물평 [1] 유비

사는 일 2008.01.24 02:06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나는 삼국지 열혈팬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나서 방기략의 삼국지, 이문열 삼국지, 정비석의 삼국지.. 그리고 저자가 생각나지 않는 여러 삼국지들을 읽어왔는데,
내용은 똑같지만 자주보니
문체라든지 심지어는 책이 양장본인지 종이가 질이 좋은 종이인지에도 그 느껴지는 바가 다르게 느껴졌다...

비록 내가 소설가는 아니더래도
삼국지 인물평을 한번쯤 써보고 싶었다...
시간이 날때마다 계속 썼으면 좋겠다...

인물평을 쓰기전에 나도 중고딩때 삼국지를 접했을때는
삼국지 소설이 얼마나 정사에 일치하는가를 상당히 따졌다.
그런데 왠일인지 전역을 하고 일상생활에 치여갈수록
하나하나 신경쓰고 고증하는 일이 귀찮게만 느껴졌고,
정사의 사실적 역사보다는
소설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감동이라든지 감정이입같은 것을 더 느끼고싶어졌기 때문에
어느정도 정사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글은 확인하지 않고 그냥 머리속에서 나오는대로 써갈길 생각이다.
따라서 태클은 환영합니다만 악플은 삭제하겠습니다.

유비
조조가 아무리 난세에 간웅에 역사적으로 저평가받는 인물이고,
제갈공명이 청사에 기리남을 천재적 인물이더라도
삼국지의 주인공은 역시 유비 현덕이다.

사실 유비의 황실종친이라는 간판은 시대가 낳은 과장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유비가 황실의 피를 이어 받았다는 것은 예전에 이리저리 검색하고 찾아보고 한 결과 별로 의심할 것은 없고,
삼국지 본문에서도 헌제와의 첫 대면때 유비와 헌제와의 촌수를 세는 장면이 나오는데
황실 족보에 유비현덕의 이름이 있으므로 틀림없는 사실이라 하겠다.
그러나 "황숙"이라고 칭호를 얻으며 더욱 더 황실종친이라는 간판을 내세울 수 있었다는 것은 난세가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시나리오라고 생각된다.
거기다 그런 황실의 피가 짙은 가문이었다면 누상촌에서 돗자리는 왜 지어 팔았는지 가끔 의문이 들기도 하고...

뭐 삼국지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다들 아시는 이야기이겠지만 조조가 대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
그에 맞서는 무리중에서 가장 기량이 뛰어나고 그릇이 크며,
관우, 장비와 같은 범같은 형제들을 두고 있는 유비현덕을 황숙으로 칭하여 힘을 실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비는 마치 드래곤볼의 손오공과 같은 존재다.
처자식을 버리기가 생각나는 것만 두차례다.(서주, 형주)
그리고 동승, 마등, 오자란 등의 무리와 피로써 맹세하고는 기회를 얻자마자 몸을 살려 피신한다.(서주로 옮길때)
더구나 어디 빌어먹던 황건적 2~3만군을 얻어 10만에 가까운 조조 군사에 감히 대적하다가 괜히 피만본다.(여남에서 관도 전투때)
평소 온화하고 착하고 인덕이 많고 어찌보면 둔한 것 같기도한 유비현덕의 이미지를 상상하다가
소설을 좀더 생각하면 소름끼치는 일이 빈번하다.

소설 그대로만 보면 사람이 착하게 살고,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옮지않은 길을 결코 선택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 다는 스토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와룡선생을 초려에 세번 방문하여 그의 몸을 일으키게 한 것이며
노장 황한승의 집에 찾아가 그를 마음으로 굴복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거기다 20살넘게 차이가 나는 새신부를 얻는 장면은 정말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온 사나이들의 가슴속에 깊히 세겨 줄 것이다.
또한 백제성에서 임종시에 제갈량에게 유선이 아둔하면 황위를 가지라는 폭탄 유언까지 했던 것이다.

그런데 좀 삐딱하게 생각하면
얻기 힘든 인재는 당연히 존중해주는 척 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고
20세 넘게 차이나는 신부를... ㄷㄷ 아무리 정략결혼이고 옛날 사고방식이 지금과는 천차만별이겠지만 양심에 가책하나 없었다니 말도 안되고
임종시 제갈공명에게 그런 폭탄 발언을 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제갈량의 마음을 떠본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유비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의견은 세상은 변하는데 그는 변할 줄 몰랐다는 것이다.
바로 지나치게 지난 것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대세가 생겨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전의 것이 더이상 미래에는 가망이 없어서 생겨난 것일 수 있다.
좀 더 미래에 적합하고 발전성이 있는 변화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했지만 그런 융통성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런 융통성이 그 시대에도 부족했다는 것은 유비가 죽고 제갈공명이 5번이나 북벌을 추진했을때 위군의 인재의 수와 촉군의 인재의 수를 비교해보면 쉽게 드러난다.
이미 그 시대에 많은 이들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유비의 촉한은 "한실 계승"의 명분이 없다면 거대세력에 반발하여 미약하지만 자신의 고집을 관철시키려하는 한낱 발버둥밖에 안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소설에서, 정확히 말해 중국의 외세에 가장 시달렸던 송,원시대에 주로 집필된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정리가 아니면 앞으로 나가지않고
정통성을 계승하려 노력하고
어떠한 시련에도 굴복하지 않으며
노력 후 어떤 보상을 원하지 않는
유비만한 주인공이 다시 없었을 것이다.

그의 실제의 모습과 역사적으로 어떠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소설에서 인간다움이란 그리고 정의로움이란 무엇인지
중국 동북쪽 누상촌에서 중국 서남쪽 촉한땅까지 60평생을 질주하며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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