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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 보고옴...

사는 일/여가 2008.07.20 04:22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심야 끊어서 봤다...
여름이고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심야인데도 주차할 데가 없었음 ;;;
토요일 열대야를 피할겸 데이트겸 겸사겸사 관람오시는 모양....
적벽을 본 이유는 원래 놈놈놈을 볼려다가 일이생겨서 취소를 하고
다시 시간이 될거 같아서 예매를 하려니 놀랍게도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벽을 선택하게 되었음...
놈놈놈 예매전에 적벽볼까 고민을 했었는데
블로그에 삼국지 관련 인물평도 몇자 적기도 하고
삼국지 드라마도 3번이상 본사람은 흔치않을 것이고 뭐 이런저런 이유로...
용의 귀환 보고 완전 실망해서 안볼려다가 서효가 볼만하다길래 선택하게 되었다.

들어가기 앞서 적벽대전에 대해서 한번 읊어본다...
삼국지에는 많은 전투가 있다.
그중에서 큰 전투로는 조조가 승리한 관도 백마 전투
육손이 촉나라 70만 대군을 불태워버린 이릉전투
장료가 손권의 30만 대군을 몰살시킨 합비전투가 있겠고
그러한 대소 전투에서 으뜸을 치는 것이 바로 적벽전투이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비판하는 의견으로는 관도 백마전투에서 조조가 원소를 이긴것이 훨씬 삼국 역사에서
중요하며 또 규모도 적벽에 비하여 손색이 없다는 의견이다.
그 말은 일리가 있는 말이다.
조조가 관도 백마 전투를 통하여 명실상부한 후한 승상이 되었으며
전투의 승리로 얻은 중원땅은 당시 중국의 거의 대부분이었고
그때 얻은 기반은 비록 적벽에서 백만 군사를 잃었다지만 크게 흔들림이 없을 정도였다.
또한 그의 세력을 고스란이 물려받은 사마씨 가문에 의하여 통일이 이루어지게 된다.
중원의 패자를 가린 관도 백마 전투야말로 삼국지의 하이라이트이며
어떻게 보면 그때 이후로 유비 손권을 군소 제후들의 반란 정도로 묘사하고 삼국지 소설의 마침표를 찍어도 무방할 정도다.
하지만 적벽대전은 삼국지에서 가장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희대의 사나이 유비현덕이 칠전팔기하여 이제야 겨우 황숙의 모습을 보이는 출발점이 되는 부분이며
한실을 우습게 아는 역적조조가 드디어 그 죄값을 치루는 부분이기 때문에 주인공을 사랑하는 여러 독자들에게 통쾌함을 전달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삼국지의 또다른 주인공인 제갈량 공명의 화려한 등장을 알리는 부분이기도 하기때문이다.
그리고 적벽대전은 삼국지에서 가장 전략전술에 뛰어난 인재들이 격돌하는 부분이다.
그 인재들로 제갈량, 조조, 주유, 방통, 서서, 감택, 정욱 등등등...
때문에 전쟁에서 보이는 무력의 모습만이 아니라 당대 석학들의 내면의 싸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적벽에서의 싸움이다.
영화 적벽은 그런 삼국지의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고 가장 드라마틱하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주제로 하고 있다.



1.촬영 기교, 구성


본론으로 들어가서 적벽을 본 소감을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나는 공학도라고 칭하고 다니는 사람이니 원인이 있으면 결과 찾고, Input 이 있으면 Output을 찾는게 거의 본능이 되었다 시피하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이런저런 기법, 왜 자꾸 이런 장면을 보여줄까 카메라 잡는 기법같은거 또
소설에서 흔희보이는 복선같은거를 유심히 본다.
그런 것이 도드라진 작품으로는 벤티지 포인트가 있었다. 스레드가 몇개씩 돌아가며 하나하나 베일을 파해치는... 끝이 좀 허무했으나 재밌게 봤다.
적벽은 그런 점을 찾아서 보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영화를 보는 중반 쯤에 알게되었다.
어느순간 "아 내가 영화랑 대화를 해보려고 하고 있었구나..."

2. 삼국지 해석


삼국지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은 분들중에 어린 분들을 보면
정사랑 얼마나 일치하는가에 상당히 초점을 맞춘다.
나이 드신분들은 인물을 재조명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나는 어느쪽인가 하면 재조명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편이다.
정사랑 얼마나 일치하는지 하는 그것은 사실 일반인에게 공개된 정사에 대한 유용하고 세밀한 정보가 대한민국에 얼마나 존재하는지도 의문이고, 그게 정사랑 일치한다 안한다 대보더라도 이미 지난일을 가지고 바꿀수도 없는 일이니 실용적이지도 않다.
지난 역사를 보고 - 그것이 소설에 꾸며진 허구의 이야기든지 어떻든지 간에 - 그 상황에 인물들이 행한 행동을보고 인격을 재조명해보고 그들의 역랑을 재평가하는 것이야 말로
역사를 자원으로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건설적인 일이기 때문에 나는 재조명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서도 나의 대인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기때문에 재조명쪽이다.
아... 젠장 영화 이야기하다가 또 버닝해버렸다. 하여든 역사 혹은 인물 재조명쪽으로 보자면
주유와 제갈량의 성격에 대한 것은 잘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나 여느 국내 소설에서는 제갈공명의 역량을 크게 부각하고 적벽대전이란 장기판에 제갈량이 손권유비주유를 장기말처럼 사용하듯이 묘사하고 있다.
나는 이런 점을 좋아하기도하고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었는데,
좋아하는 이유는 주인공이 잘하니까 좋은 것이고(자아주입이라고 하는 건가... 하여튼 그런이유...)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는 것은 너무 다른 사람들의 개성과 능력이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적벽에서는 그러한 밸런스를 잘맞추었지만 악역 조조에 대한 묘사는 좋지 못했다고 생각이 든다.
배트맨도 그렇고 요즘 영화들은 악역에게도 왠지모를 카리스마가 있으며 공감대가 형성되는 매력적인 악역이 있는데
적벽에서는 내가 주로 보아오던 중국무협영화에서 나오는 악역들처럼 조조가 그냥 여자나 밝히는 악당일 뿐이라서 아쉬웠다.
2부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소심했던 주유가 대범하고 사내답게 나오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손권의 패기 넘치는 모습이 흐뭇하였다.
그외 유관장 삼형제 캐스팅은 쪼매 미스가 있었나 싶지만 좋았고
조운은 유덕화보다 좋았다고 생각한다.
인물간의 복잡한 내적갈등은 2부가 되어봐야 본격화 되지 않나 싶다.
스토리는 소설과 비슷하나 영화적 구성을 위하여 각색된 부분이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기타 다른 매체와의 비교



확실히 다른매체에 비하면 스펙터클하며 리얼하였다.
뭐 전쟁영화인데 이정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돈도 많이 들었다는데.
그러나 아직 본 전투가 2부에서 남았기 때문에 기대할 필요가 있지싶다.
영상매체로 비교할만한 TV 82부작 시리즈는 90년대 초반에 나온 작품이니 비교할 수가 없지싶다.
TV판은 전반부는 조조이야기 후반부는 제갈량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다.
스토리 전달력은 제아무리 8백억 영화라도 82부작을 따라 갈 수 있나... 게임이 안된다.

결론을 내자면
삼국지 좋아한다고 심각하게 생각하고 보면 안되겠고
중국사람이 자기 나라의 고유 유산을 전쟁영화화한 작품이라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같다.
옛날에는 저런 옷을 입었나보다, 저런걸 타고 다녔나보다, 뭐 이런거... 보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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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써보고 싶었던 삼국지 인물평 [2] 관우

사는 일 2008.01.25 01:55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관우
관우는 유비, 제갈공명, 조조, 사마의, 손책과 더불어 삼국지 주요 사건의 핵심을 이루는 인물이다.
관우말고 다른 이들이 왜 삼국지 주요사건의 핵심인지는 그 사람들을 평가할 때 다룰 것이다.

관우편을 끄적으면서 어제 유비편을 쓰면서 못썼던 부분도 이야기 하고 싶다.
유비 관우 장비 세 의형제에 대해서 삐딱하게 보는 시선이 요즘 많다.
그 시대 상황에는 그런 의형제를 맺는 일이 허다했다, 유관장 삼형제는 그냥 동네에서 의적행세를 하던 건달의 무리였다.... 등등의 시각이 그 주장의 골자다.
실제로 삼국지에서 의형제를 맺는다는 장면은 자주 나온다.
손책 주유의 의형제,  조범 조운의 의형제, 강유 종회의 전략적 의형제 등등...

그런데 그런 의견이 역사가들의 글에서 나오는 말이면 어느정도 수긍할 수 있겠지만
소설가의 글에서 나온다면 그 소설가의 소설적 역량과 소설가로서의  기본소양에 의심이 간다.
실례로 장정일 소설가가 자신의 삼국지를 출판하기 전 두명의 전문인과 같이 집필한 삼국지 해제라는 책에 그런 주장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런 내용을 장정길이 썼다고 생각하면 이건뭐 논문을 쓰려고 삼국지를 쓰는 건지 소설을 쓰려고 삼국지를 쓴건지 도무지 알길이 없을 노릇이다.
그런 이유로 장정길 삼국지는 이제까지 보지 않았다.

유관장 삼형제의 의형제는 그 의로운 면이 단연 돋보인다. 마치 소설속에 주제일 정도로 느껴질 정도다.
유비가 말년에 떠돌던 자신의 입지를 명확하게 해주고
드디어 자신의 야망을 중국 전역에 퍼트릴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은사 제갈공명의 만류를 뿌리치고
관운장의 복수를 하기위해 동오를 침범하고
육손의 계교에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자체가 그 의로운 면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실 유비 자신도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싶다.
유비가 겉으로 보이는 것과 같이 반드시 정의롭다고 실행하고, 정도가 아니라고 걸어나가는 인물은 아니다.
실상 상당히 주도면밀한 인간이다.
그 주도면밀함은 일을 적절하게 잘 처리하는 주도면밀 뿐만아니라,
남들에게도 어떤 이미지를 보이게 될까 남들 시선까지 의식하면서 일잘하는 주도면밀함까지 갖춘 인간이 유비였다.
그런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위해 70만 대군을 이끌고 동오를 침범했다는 것은
단순히 관우 복수의 뿐만아니라 유비 자신의 강한 자신감도 없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소설 삼국지에서는 다분히 의형제의 의로움을 부각시키고 있다.
유비편에서도 그렇고 이번 편에서도 내가 이야기 하고싶은 것은 실상은 그랬을지 몰라도
우리는 소설에서 보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너무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사실로 해석하려 하지말고
그 자체를 아름답고 사람답게 사는 것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관우는 유비에게 그런 존재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줄 수 있는 믿음직한 아우.
그의 충절은 오관육참(이것도 정사에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뭐 어쨌거나 관우의 무공은 조조가 인정했다.)으로 널리 떨쳐졌고
무공은 익히 그 적수가 없었다.
특히나 일본 코에이사의 삼국지 게임에서 관우의 열전을 적기를
춘추좌씨전을 즐겨 읽었다는 (두예도 그랬다고 하지만...) 이야기가 있었고
삼국지 초반에 서당을 운영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학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삼국지 게임을 참고로 했다는데 피식했을 분들 있을줄안다만,
일본게임의 완성도를 아는 사람, 특히나 삼국지라는 나오기만하면 메가히트급 돌풍을 일으킬만한 타이틀에 대한 완성도는 장난아닐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의 참고에 어느정도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문무겸비하고 충절이 넘치며 인간적으로도 매력이 넘치며 존경받는 관우의 존재는
스스로도 그가 공자 맹자가 아닌 한 사람의 무장인 이상 매너리즘에 빠질만한 인물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또한 유비가 형주에서 궐기할 때 새로운 세력에게는 확실히 경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제갈공명이 적벽대전에서 관우의 죄를 용서한 사건과
형주에 홀로 남겨둔 관운장의 지원이 늦었다는 것은 어찌보면 그런 의견을 대변한다.
그만큼 관우는 삼국지의 세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매너리즘이 너무 강했던 것이 탓이다.
그가 그 이전에 보여줬던 학문을 아는 무패의 무장, 인간적이며 충절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그의 삶은 너무나 둥글지 못했던 면모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육손이 부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봉화대의 수비대장을 미방, 부사인등으로 배치했다는 것은 다만 육손을 우습게 봤다는 것만이 아니라,
육손이라는 존재를 전혀 파악하지 못할정도로 동오라는 국가를 우습게 여겼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때까지 솥의 세 발과 같은 삼국 정립의 형상을 위해 동오와 친선을 노력하고 그 들에게서 이익을 찾아 먹고, 위국을 견제하고자  노력했던 촉한의 제2인자 제갈공명의 전략에
그렇게 수긍하는 입장이아니었거나, 그런 의견을 묵살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만큼 그의 매너리즘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 외에도 마초 오호대장 사건이라든지, 노숙 포로사건등이 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조운과 그를 비교했을 때 쉽게 드러난다.
사실 관우와 유비의 의형제 이슈를 빼고
촉한에서의 공로로 조운과 관우의 공적을 따진다면 그리 큼지막한 차이가 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뭐 미염공 한수정후 관우 운장(어릴때는 자가 수장이었다고 한다...)을 열심히 까댄거 같다.
방통이 죽고 그의 죽음이 진행되는 부분에서는 진짜 삼국지 읽기 싫었다.
마음 같았으면 방덕을 밀고 육손도 밀어버리고 동오를 통일했다면 좋겠다는 시나리오도 생각해보고
실제로 중3때는 그가 손권에게 붙잡혀서 사형당할뻔하다가 손권이 너무 아깝다고 형집행을 잠시 연기하고
옥속에서 관우가 탈출해서 삼국을 통일한다는 이야기도 써본적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그런 소설속의 관우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내가
관우의 단점을 알았다고 해서 그 당시를 부끄러워 해야할까?
의리와 정리, 충절, 그리고 형제애.... 아무리 세상에 좋은 것이 많이 나오고 수단과 방법이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사람으로서 가져야할 면모를 부끄러워 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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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써보고 싶었던 삼국지 인물평 [1] 유비

사는 일 2008.01.24 02:06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나는 삼국지 열혈팬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나서 방기략의 삼국지, 이문열 삼국지, 정비석의 삼국지.. 그리고 저자가 생각나지 않는 여러 삼국지들을 읽어왔는데,
내용은 똑같지만 자주보니
문체라든지 심지어는 책이 양장본인지 종이가 질이 좋은 종이인지에도 그 느껴지는 바가 다르게 느껴졌다...

비록 내가 소설가는 아니더래도
삼국지 인물평을 한번쯤 써보고 싶었다...
시간이 날때마다 계속 썼으면 좋겠다...

인물평을 쓰기전에 나도 중고딩때 삼국지를 접했을때는
삼국지 소설이 얼마나 정사에 일치하는가를 상당히 따졌다.
그런데 왠일인지 전역을 하고 일상생활에 치여갈수록
하나하나 신경쓰고 고증하는 일이 귀찮게만 느껴졌고,
정사의 사실적 역사보다는
소설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감동이라든지 감정이입같은 것을 더 느끼고싶어졌기 때문에
어느정도 정사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글은 확인하지 않고 그냥 머리속에서 나오는대로 써갈길 생각이다.
따라서 태클은 환영합니다만 악플은 삭제하겠습니다.

유비
조조가 아무리 난세에 간웅에 역사적으로 저평가받는 인물이고,
제갈공명이 청사에 기리남을 천재적 인물이더라도
삼국지의 주인공은 역시 유비 현덕이다.

사실 유비의 황실종친이라는 간판은 시대가 낳은 과장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유비가 황실의 피를 이어 받았다는 것은 예전에 이리저리 검색하고 찾아보고 한 결과 별로 의심할 것은 없고,
삼국지 본문에서도 헌제와의 첫 대면때 유비와 헌제와의 촌수를 세는 장면이 나오는데
황실 족보에 유비현덕의 이름이 있으므로 틀림없는 사실이라 하겠다.
그러나 "황숙"이라고 칭호를 얻으며 더욱 더 황실종친이라는 간판을 내세울 수 있었다는 것은 난세가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시나리오라고 생각된다.
거기다 그런 황실의 피가 짙은 가문이었다면 누상촌에서 돗자리는 왜 지어 팔았는지 가끔 의문이 들기도 하고...

뭐 삼국지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다들 아시는 이야기이겠지만 조조가 대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
그에 맞서는 무리중에서 가장 기량이 뛰어나고 그릇이 크며,
관우, 장비와 같은 범같은 형제들을 두고 있는 유비현덕을 황숙으로 칭하여 힘을 실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비는 마치 드래곤볼의 손오공과 같은 존재다.
처자식을 버리기가 생각나는 것만 두차례다.(서주, 형주)
그리고 동승, 마등, 오자란 등의 무리와 피로써 맹세하고는 기회를 얻자마자 몸을 살려 피신한다.(서주로 옮길때)
더구나 어디 빌어먹던 황건적 2~3만군을 얻어 10만에 가까운 조조 군사에 감히 대적하다가 괜히 피만본다.(여남에서 관도 전투때)
평소 온화하고 착하고 인덕이 많고 어찌보면 둔한 것 같기도한 유비현덕의 이미지를 상상하다가
소설을 좀더 생각하면 소름끼치는 일이 빈번하다.

소설 그대로만 보면 사람이 착하게 살고,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옮지않은 길을 결코 선택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 다는 스토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와룡선생을 초려에 세번 방문하여 그의 몸을 일으키게 한 것이며
노장 황한승의 집에 찾아가 그를 마음으로 굴복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거기다 20살넘게 차이가 나는 새신부를 얻는 장면은 정말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온 사나이들의 가슴속에 깊히 세겨 줄 것이다.
또한 백제성에서 임종시에 제갈량에게 유선이 아둔하면 황위를 가지라는 폭탄 유언까지 했던 것이다.

그런데 좀 삐딱하게 생각하면
얻기 힘든 인재는 당연히 존중해주는 척 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고
20세 넘게 차이나는 신부를... ㄷㄷ 아무리 정략결혼이고 옛날 사고방식이 지금과는 천차만별이겠지만 양심에 가책하나 없었다니 말도 안되고
임종시 제갈공명에게 그런 폭탄 발언을 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제갈량의 마음을 떠본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유비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의견은 세상은 변하는데 그는 변할 줄 몰랐다는 것이다.
바로 지나치게 지난 것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대세가 생겨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전의 것이 더이상 미래에는 가망이 없어서 생겨난 것일 수 있다.
좀 더 미래에 적합하고 발전성이 있는 변화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했지만 그런 융통성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런 융통성이 그 시대에도 부족했다는 것은 유비가 죽고 제갈공명이 5번이나 북벌을 추진했을때 위군의 인재의 수와 촉군의 인재의 수를 비교해보면 쉽게 드러난다.
이미 그 시대에 많은 이들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유비의 촉한은 "한실 계승"의 명분이 없다면 거대세력에 반발하여 미약하지만 자신의 고집을 관철시키려하는 한낱 발버둥밖에 안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소설에서, 정확히 말해 중국의 외세에 가장 시달렸던 송,원시대에 주로 집필된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정리가 아니면 앞으로 나가지않고
정통성을 계승하려 노력하고
어떠한 시련에도 굴복하지 않으며
노력 후 어떤 보상을 원하지 않는
유비만한 주인공이 다시 없었을 것이다.

그의 실제의 모습과 역사적으로 어떠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소설에서 인간다움이란 그리고 정의로움이란 무엇인지
중국 동북쪽 누상촌에서 중국 서남쪽 촉한땅까지 60평생을 질주하며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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