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도루왕'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01.10 전준호... 차기 롯데 감독감으로 어떨지... (1)

전준호... 차기 롯데 감독감으로 어떨지...

사는 일/스포츠 2007.01.10 00:40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이렇게 야구에 열정이 있고 야구를 알고 하는 선수를 팔아넘긴 롯데...

=====================================================================================
와인처럼 숙성한 이 남자, 전준호
[스포츠2.0 2007-01-09 17:11]    
/전준호.(사진 김수홍)

12월 19일 수원구장. ‘자율 훈련’ 중인 현대 선수 가운데 송지만이 이날의 인터뷰 대상자인 전준호 옆에 서서 물었다. “인터뷰 기사 제목이 뭡니까?” “글쎄, 하나 정하시죠.” 송지만은 “‘호타준족의 사나이’ 어때요?”라고 했다. 과연 전준호는 통산 타율 2할9푼에 521도루를 기록한 호타준족이다. 그러나 제목으로는 와 닿지 않는다. 퇴짜를 놓았더니 씩 웃으며 다시 말했다. “와인 같은 남자, 야구선수는 와인처럼 숙성할수록 제 맛이 나거든요.”

1991년 4월 5일. 그해 프로야구의 개막전이 열린 날이다. 뒷날 한국프로야구에 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면 이날은 어느 선수의 얼굴이 새겨진 금속판 아래 기록될지 모른다. 바로 한국프로야구의 도루왕 전준호(37,현대)가 최초의 도루를 성공한 날이기 때문이다. 포수는 이만수, 투수는 재일동포 출신 김성길이었다. 7번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전한 영남대 출신 신인 전준호는 이날 4타수 3안타에 521도루(2006년까지)로 가는 첫발을 내디뎠다.

1982년 도루왕 김일권은 타격왕 백인천, 홈런왕 김봉연, 타점왕 김성한에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1999년 홈런왕 이승엽의 이름을 아는 이들도 그해 도루왕이 누구인지 떠올리기 쉽지 않다. 홈런의 시대 이후 도루는 인기없는 타이틀로 전락했다.

1988~1995년에는 1경기당 평균 2.0개의 도루가 두 팀에서 나왔다. 올해는 평균 1.5개다. 2000년 이후 올해까지 평균 기록은 1.4개에 그쳤다. 지금까지 시즌 50도루 이상 기록은 모두 21회 나왔다. 2000년 이후에는 2001년 정수근(52개), 2002년 김종국(50개), 2003년 이종범(50개), 2004년 전준호(53개), 2006년 이종욱(51개)이 기록했다. 이종욱을 제외한 4명 가운데 가장 데뷔가 늦은 선수는 김종국이다. 그는 10년 전인 1996년에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도루왕들의 시대는 갔다.

올해 두산 이종욱과 SK 정근우는 막판까지 치열한 도루왕 경쟁을 했다. 류현진, 이대호의 투타 3관왕에 가려지긴 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사람들은 있었다. 전준호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는 두 선수를 “도루의 맥을 잇는 선수”라고 말한다. ‘좋았던 옛날’이 기억나서만이 아니라 “도루는 프로야구가 팬들에게 보여 줄수 있는 훌륭한 서비스”라고 믿기 때문이다.

‘도루의 수난기’는 2~3년 안에 달라질지도 모른다. 올해 프로야구에서는 1993년 이후 가장 낮은 방어율 기록(3.58)이 나왔다. 홈런 수 역시 1993년 이후 가장 적었다. 장타 위주의 야구가 사라지면 감독들은 공격적인 베이스 러닝에 눈을 돌릴 것이다. 도루가 부활할지 모르는 시점에서 도루왕 전준호를 만나 도루와 그의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2006년

데이터를 신뢰하는 편인가. 지난해 타율(.266)이 지난 8년 사이 가장 나빴다. 시즌 뒤에 상대 투수들이 내게 어떤 구종과 볼 배합으로 상대했는지 자료를 구해 집중 연구했다. 올해 타율을 2할8푼7리로 끌어올린 데는 데이터 분석 덕이 있는 것 같다.

1번타자일 때 타율이 2할6푼8리, 출루율이 3할5푼4리다. 2번일 때는 타율이 3할1푼1로 높지만 출루율은 3할5푼4리로 같은데 1번타자에게 최고의 통계는 출루율이다. 무조건 살아나가야 한다. 1번타자의 미덕은 인내다. 볼카운트가 유리하면 안타 치기 좋은 공이 오고 불리하면 그 반대다. 치기 좋은 공이 와도 기다려야 하는 게 1번타자가 겪는 어려움이다. 1번 타순에 기용되면 타율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있는데, 그런 이유일 것이다. 2번타자로 뛸 때는 의식적으로 안타를 노렸다. 우리 팀에는 이택근, 송지만 등 좋은 1번타자들이 많다. 전통적으로 2번타자에게 작전 수행 능력을 요구했지만 내 생각으론 적극적인 타격이 중요한 게 요즘 2번타자다.

시즌 뒤 LG로 옮긴 김용달 코치는 “강타자를 1번에 배치하는 타순을 짜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가. 영남대 1년 후배인 양준혁은 아마 1번타자로도 제 몫을 할 것이다. 선구안이 좋고 자기 공이 아니면 치지 않는다. 중심 타자로도 최고지만 최고의 1번타자가 될 수 있는 선수다.

배영수(타율 .400), 신용운(.500), 한기주(.400), 노장진(.667), 최대성(.500) 등 빠른 공 투수에게 의외로 강했다. 나이가 들면 배트 스피드가 느려져 강속구를 치기 어려운 것 아닌가. 타격은 실투를 놓치지 않는 게 기본이다. 빠른 공 투수들은 기교파에 비해 실투가 많은 편이다. 사실 빠른 공 투수가 공을 ‘라인에 태우면’ 칠 수 없다. 바깥쪽, 몸쪽 스트라이크존에 걸치는 시속 150km짜리 공이 들어오면 운이 나빴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타자에게는 다음 기회가 있고 투수는 실투할 때가 있다. 그때를 놓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두산 투수들에게는 약했다. 투수들이 워낙 좋다. 매트 랜들과 다니엘 리오스는 내 약점을 잘 찌른다. 두산과 경기할 때는 두 투수와 꼭 맞붙었다.

■도루론

과거보다 도루 수는 줄었지만 성공률은 더 높다. 2004년에는 53도루를 하며 높은 도루 성공률을 보였다. 비결이 있나. 눈이 좋아졌다. 나도 20대에는 요즘 이종욱만큼 빨랐다. 나이가 들면 순발력은 떨어지게 돼 있다. 도루에는 3S가 있다. 스타트(Start), 스피드(Speed), 슬라이딩(Sliding)이다. 스피드를 제외한 두 S는 신체 능력보다는 경험이 중요하다.

눈이 좋아졌다는 게 어떤 뜻인가. 3S 가운데 스타트가 가장 중요하다. 좋은 스타트를 위해서는 투수의 허점을 정확하게 눈으로 읽어야 한다. 허점을 읽기 위해서는 나와 투수의 호흡을 맞춰야 한다. 이 점에서 무도(武道)와 비슷하다. 검사는 상대의 검이 날아오는 방향을 미리 안다. 눈으로 보고 피하는 게 아니다. 호흡을 맞추면서 검이 날아올 때를 아는 것이다. 투수가 견제를 할 때와 포수를 향해 공을 던질 때는 호흡이 다르다. 그 차이를 빨리 잡아낼 수 있어야 한다.

과거 이종범과 도루왕 경쟁을 할 때는 2루까지 몇 발짝이면 간다는 얘기가 화제가 됐다. 지금도 그때와 같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할 때는 11발짝, 다리로 들어갈 때는 12발짝이다. 이런 주법으로 뛰는 선수는 많지 않다. 보통 선수보다 반 발짝이나 한 발짝 적다.

다리가 그렇게 긴 편은 아니지 않나. 축지법이라도 쓰나. 리드 폭을 넓히기 때문이다. 11~12발로 2루에 가기 위해서는 1루에서 5발짝 반 정도는 떨어져야 한다. 보폭을 넓히기 위해 뛸 때 탄력을 주는 요령도 있다.

1991년에 데뷔했지만 본격적으로 도루를 한 건 1993년부터다. 쌍방울 레이더스에 있던 조 알바레스 코치가 1993년 롯데로 왔다. 그분 전공이 주루다.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를 특히 강조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도루에는 위험이 따른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면 미리 그어둔 한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나도 초창기에는 도루 실패가 많았다. 데뷔 시즌에는 도루 18개에 도루 실패 12개였다. 그러나 도루 실패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면 도루왕 전준호는 없었을 것이다. 좋은 스승을 만난 게 행운이다. 그때 롯데가 뛰는 야구를 추구하기도 했다. 1994년에는 4번을 치던 김민호 선배가 21도루를 하기도 했다.

도루가 위험한 플레이라는 점은 맞지 않나. 도루 실패는 아웃 카운트 하나에 주자 한 명까지 없앤다. 게다가 부상 위험도 있다. 그건 맞다. 하지만 성공 확률이 75%라면 도루를 시도해야 한다고 본다. 빠른 주자는 후속 타자에게 이점을 준다. 도루가 우려되면 포수는 극단적인 볼 배합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1993년 이종범과 치열한 도루왕 경쟁을 했다. 내가 75개, 이종범이 73개였다. 올해 이종욱과 정근우를 지켜보며 그때가 생각났다. 그해 롯데와 해태가 맞붙으면 어땠는 줄 아는가? 나나 이종범이 주자로 나가면 포수가 피치 아웃(주자 견제를 위해 포수가 일어서서 공을 받는 투구) 3개를 연속으로 했다. 그럼 노 스트라이크 스리 볼이다. 네 번째로 공을 빼면 타자가 볼넷으로 걸어나가려 하지 않고 배트를 휘둘러 줬다. 2루로 뛰라는 의미였다. 이런 일도 있었다. 주자 1루에서 내야 땅볼을 쳤는데 해태 2루수 홍현우가 2루로 던지지 않고 1루로 송구해 날 아웃시키더라. 정상적이라면 선행 주자를 잡아야 하지만 내가 1루로 나가 도루하는 꼴은 못 보겠다는 뜻이었다.

그해 9월 26일 쌍방울 전에서 이종범이 도루 6개를 성공하자 쌍방울 부회장이던 이용일 씨가 호통을 쳤다는 얘기도 있다. (웃으며)글쎄, 정상적인 플레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최선을 다한 멋진 경쟁이었다.

요즘 도루가 과소평가되는 분위기다. 이승엽이라는 수퍼스타가 나온 뒤 장타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야구가 됐다. 물론 홈런은 팀에게나 팬에게나 중요하다. 도루가 홀대받는다는 느낌보다 야구장에서 허슬플레이가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선수들이 활발하게 뛰는 경기는 팬들의 심장을 뛰게 만든다. 요즘 후배들은 다치지 않으려고 도루를 피한다는 느낌이 든다. 프로라면 팬을 생각해야 한다. 정근우나 이종욱, KIA 이용규는 도루의 맥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후배들이다. 내가 2004년, 이종범이 2003년 도루 타이틀을 땄다. 언제적 이종범이고 언제적 전준호인가.

주자 이종범은 어떻게 생각하나. 프로 입단할 때 처음 세운 목표가 뭐였는지 아는가?

뭐였나? 통산 도루 200개였다. 500개를 넘은 것은 이종범이라는 라이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성기를 기준으로 나와 이종범은 뛰는 스타일이 달랐다. 이종범은 스피드가 뛰어났다. 슬라이딩도 더 좋았다. 반면 나는 스타트가 좀 더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역시 도루의 3요소 가운데 스타트가 중요하다는 의미가 되나?

외국 선수 가운데 연구 대상이 있었는가. 리키 헨더슨(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도루 1,406개)이다. 비디오테이프로 연구를 많이 했다. 스타트를 오른발로 하는지 왼발로 하는지까지 살피면서 헨더슨이 빨리 뛰는 이유를 알아내려 했다. 1,2루간을 11~12발로 뛰는 주법도 사실 헨더슨을 연구하며 익혔다. 헨더슨은 스타트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타트를 끊은 뒤 첫 다섯 발짝이 엄청나게 빠르다. 문자 그대로 폭발적이다. 나도 이 점을 배우려 했다. 지금도 젊은 후배들과 달리면 10m까지는 절대 지지 않는다. 10m가 지나면 힘이 달려 뒤떨어지지만.

주법에 맞는 훈련은 어떤 건가. 줄넘기가 가장 좋다. 사다리를 이용한 운동도 많이 한다. 순발력 향상을 목표로 운동 프로그램을 짠다. 다른 선수들은 50~70m 왕복 달리기를 많이 한다. 나는 30m 이상은 좀체 뛰지 않는다. 10m 달리기도 많이 한다.

/전준호는 11월 중순부터 수원구장에서 자율훈련을 시작했다. 트레이너가 짜준 스케쥴에 따라 6주 동안 주 4회 스트레칭, 자전거, 웨이트트레이닝, 튜빙, 캐치 볼 등을 소화한다.(사진 김수홍)

짧은 거리를 뛰는 이유는. 근육에 자극을 줘 빠른 스피드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다.

■500도루 2,000안타

500도루 순간이 기억나나. 지난해 8월 5일 수원 롯데전 1회말이었다. 번트 안타로 출루한 뒤 2루를 훔쳤다. 투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이상목이었다). 499호 도루에 성공한 뒤 꽤 오랫동안(24일) 기록을 이루지 못해 경기마다 꽃다발을 준비했던 구단 직원에게 미안했다.

1호 도루는 언제였나. 1991년 4월 5일 대구 삼성전이었다. 투수는 김성길, 포수는 이만수였다. 도루 사인은 없었다. 그때는 내 능력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앞서 있었다. 500도루를 할 때도 ‘그린 라이트’였다.

김성길은 언더핸드 투수다. 잠수함투수가 도루하기 쉽지 않나. 왼손투수가 더 쉽다. 왼손투수는 습관만 잘 파악하면 오히려 손쉬운 상대가 된다. 빠른 견제를 하는 왼손투수는 드물다. 왼손투수가 나오면 리드 폭을 6발까지 넓힌다.

어떤 포수가 가장 어려웠나. LG 조인성이다. 아마 정회열 선배에게 가장 많은 도루를 기록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도루는 포수가 아닌 투수를 상대로 하는 것이다. 한창 도루를 많이 할 때는 다른 팀 포수 선배들에게 ‘그만 좀 뛰라’는 농담같지 않은 농담도 많이 들었다.

도루를 많이 하면 빈볼 위험도 높아질 것 같은데 홈런 타자보다는 덜하다. 맞혀서 내보내면 또 뛰니까. 하지만 경기가 결정된 상태에서 맞는 건 어쩔 수 없다.

도루를 하지 않는 상황이 있다면 투아웃 2루에서 3루로 가는 도루는 무의미하다. 1993년 도루왕 싸움할 때 말고는 이런 도루는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도루에 대한 목표가 아직 남아 있나. 원래 200개만 하려고 했다.(웃음) 그 뒤 기록은 하나하나씩 쌓아올린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제는 2,000안타가 목표다. 사실 2,000안타 때문에 올해 도루를 자제했다. 상대 투수는 도루를 의식하면 견제구를 많이 던진다. 귀루 때는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해야 한다. 이 슬라이딩은 위험하다.

2,000안타 목표는 언제 세웠나. 2004년에 1,500개를 넘어섰다. 두 시즌 정도 뛰면 무난히 달성할 것 같다. 나보다는 (양)준혁이가 먼저 돌파할 것 같다(양준혁은 올해까지 1,946개). 대학을 졸업하고 상무에서 병역 의무를 마친 선수가 세우는 기록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송진우는 올해 200승을 돌파했다. 정말 부러웠다. 나도 500도루 기록을 세웠을 때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동안 흙투성이가 되고, 멍들고 한 끝에 받은 보답 같았다. 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면 200승 투수는 당연히 헌액돼야 한다. 타자한테는 2,000안타일 것이다. 준혁이가 먼저, 그다음에는 내가 2,000안타를 칠 것이다(전준호는 1,791안타로 이 부문 통산 2위다).

■마산, 부산, 그리고 수원

야구는 언제 시작했나.마산 상남초등학교 6학년 때다. 마산동중을 거쳐 마산고등학교, 영남대를 나왔다. 초등학교 야구부가 6학년 때 생겼다. 하지만 이전에도 중학교 야구부를 찾아 같이 훈련을 했다. 초등학생이 배트와 글러브를 들고 “야구 하고 싶어 왔다”고 하니 당돌했을 것이다. 야구가 좋았고 꿈이었다. 그때는 프로야구가 없었다. 장훈 선배를 우상으로 여겼다. 그 시절 장선배 경기 장면을 TV에서 몇 번 보여줬다.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2루 쪽으로 대는 세이프티 번트도 장선배의 자서전을 읽고 배운 것이다. 1995년 한·일 슈퍼게임 때 장선배를 만나 번트에 대한 얘기를 나눈 게 기억에 남는다. 막상 이야기를 나눠보니 번트에 대한 생각이 좀 달랐다. 나는 공이 떨어지는 지점을 중시했는데 장선배는 공을 배트에 대는 게 아니라 때려내야 한다고 했다.

그 번트는 언제부터 했나. 1992년부터다. 완성하는데 3년이 넘게 걸렸다. 그전까지 말도 안 되는 아웃을 당하기도 해 팬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다. 요즘은 세이프티 번트에 대비해 ‘전준호 시프트’를 하는 팀들이 있다.

어떤 시프트인가. ‘영업 비밀’이다.

1997년 롯데에서 현대로 트레이드됐다. 왜 그랬을까. 참 허탈했다. 야구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다. 그 전해 성적이 가장 나쁘기도 했었고…. 이제 와서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구단으로서는 선수의 상품가치가 있을 때 팔아야 하지 않겠나. 계약금 2천만 원 주고 데려온 선수로 문동환이라는 좋은 투수를 잡았으니.

그리고 2004년에 정수근을 데려왔다. 열 배 더 든 셈이지, 뭐.

당시 롯데 구단과 문제가 있었던 건가. 프런트와는 문제가 없었다. 롯데는 선수들에 대한 투자가 인색하기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다른 팀과는 달리 가족같은 끈끈한 정이 있다. 선수들이 구단 직원들에게 스스럼없이 형, 선배라고들 했다. 좋은 관계였다.

현대는 어떤 팀이었나. 최고 기량의 선수들이 모인 팀이었다. 다들 자존심이 강했고 지기 싫어했다. 개성도 뚜렷했다. 처음에는 스타들을 하나로 모으는 게 어려웠다. 하지만 1998년 우승 뒤 선수들이 경기를 이기는 방법을 깨달았다. 여러 선수들이 떠났지만 그 노하우가 아직 이어지는 것 같다.

현대 창단 멤버는 아니지만 네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봤다. 또 지금의 어려운 과정까지 지켜보고 있는데 야구는 선수들이 한다. 선수단에 대한 지원은 예전보다 확실히 줄었다. 그러나 지원은 승리의 한 부분일 뿐이다.

코칭스태프가 개편됐다. 선수들이 동요하지 않나. 오히려 기대가 된다. 김재박 감독의 야구가 있듯이 김시진 감독의 야구도 있다. 내가 모르는 새로운 야구를 배울 기회다. 내가 갖고 있는 좋은 점을 누가 뭐라고 한다고 해서 버리겠는가? 여기에 새로운 야구를 더하는 것이다. 흥분된다.

김재박 감독의 야구는 어땠나. 대타나 투수 교체 때는 데이터를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경기를 풀 때에는 육감을 중시한다. 경기의 맥을 잘 짚는 분이다. 더그 아웃에서 감독 옆에 자주 앉는 편이다. 감독이 작전 패턴을 분석하려 일일이 메모를 한 적도 있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 줄 아나?

어땠나? 그때그때 다 다르더라.(웃음) 김성근 감독의 LG와 경기할 때다. 무사 2, 3루에서 스퀴즈 작전을 내 1점을 뽑았다. 다음 타자에게 또 스퀴즈 작전을 냈다. 안타 없이 2점을 냈다. 그때 ‘저 양반은 상상을 초월하는 사람’이라고 감탄했다.

스퀴즈는 어려운 플레이 아닌가. 상대에게 의도를 들키지 않는 게 우선이다. 배트가 미리 나오면 안 된다. 그리고 스트라이크든 볼이든 대야 한다. 우리 팀에 번트를 잘 대는 선수들이 많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그런 선수들을 길러낸 것이다. 전지훈련 때보다 페넌트레이스의 번트 연습량이 더 많다. 희생 번트, 기습 번트, 점수를 얻는 번트 등등 상황에 맞춰 훈련을 한다. 다른 팀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김시진 감독은 어떨 것 같나. 1차 지명권이 몇 년째 없는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투수진을 운용한 지도자다. 이미 기량은 검증받았다고 생각한다. 섬세한 야구를 할 것 같다. 김재박 감독과 다르다면 9회말 2사후에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선수의 마지막 한 발까지 지켜볼 분이다. 성품이 원래 그렇다.

■베테랑

현대 이적 때만 하더라도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가 있었다. 서른 줄을 바라보는 선수가 1, 2년 부진하면 퇴물 취급당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29~33살에 타율 3할을 4차례 기록했다. 2004년에는 35살에 도루왕이 됐다. 아마 최고령 도루왕일 것이다. 야구는 경험이 중요한 경기이고 나이 든 선수에게는 경험이 있다. 메이저리그에는 한 팀에 40살 넘은 선수가 한두 명은 있다. 그만큼 경험을 높이 사는 것이다. 야구는 자기 관리만 잘 하면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운동이다.

몇 년 더 지금 기량을 유지할 수 있겠나. 유지? 더 올릴 것이다. 해마다 시즌을 마치면 아쉽다. 더 잘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내년에 더 좋은 성적을 낼까 고민한다. 2,000안타 달성 때까지 은퇴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 야구 인생에서 정해놓은 목표다. 최근 들어 ‘플래툰’으로 뛰니 기록 달성이 좀 늦어질 것 같지만 팀의 결정이다.

올해 왼손투수 상대 성적(12타수 4안타)이 나쁘지 않았다. 우리 팀은 전지 훈련 때부터 왼손투수용 타자를 기른다. 성적과는 관계없이 미리 정한 계획대로 간다.

지명타자로 자주 뛰는데 어떤가. 리듬이 끊긴다고 말하는 선수들도 있다. 물론 수비하는 게 좋다. 집중력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내 경우엔 지명타자로 기용되면 더 바쁘다. 수비 때도 계속 뛰어다니기 때문이다. 경기에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다(올해 좌익수로 출전했을때, 타율 .274, 지명타자로 .270을 기록했다).

프리에이전트(FA) 성공 사례이기도 하다. 다른 FA들은 왜 실패했다고 생각하나. 아마 FA 자격을 얻는 해에 무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상이 있어도 남몰래 진통제를 맞고 그냥 뛴다. 그래서 무리가 더 쌓인다. 결국은 부상이다. 내 경우는 2005년 외에는 시즌 중에 큰 부상으로 고생한 적이 없다. 그해에 허리 통증으로 5월의 절반을 쉬었다. 복귀한 뒤에는 손등을 다쳤고 8월에는 오른쪽 다리 인대가 끊겼다. 재미있는 게 있다. 5월에 복귀한 뒤 타격은 됐지만 주루가 힘들었다. 다른 선수 대주자로 나가본 적은 많았지만 대주자로 교체된 경험은 그때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허리는 어떻게 다쳤나. 도루 때문이었다. 2루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잘못해 허리에 충격이 왔다. 배로 미끄러지듯 들어가야 하는데 가슴이 먼저 닿았다. 경기 당일에는 별 이상 없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질 못했다. 2004년 53도루를 하면서 충격이 쌓인 결과인 것 같다. 부상은 선수의 적이다. 2001년 시즌 뒤 어깨 수술을 했는데 그 뒤 아침마다 팔을 한 바퀴 휘두르는 게 습관이 됐다. 눈을 뜨자마자 ‘내 팔이 잘 붙어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수의 비결이 있다면 자신과의 싸움이다. 부상을 피하기 위해 꾸준히 몸을 관리해야 한다. 비시즌에도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오프 시즌에 2주 이상 쉰 적이 없다. 쉬는 기간에도 농구나 등산을 한다. 쉬운 것 같지만 어렵다. 프로 생활 16년 동안 좋은 친구들을 많이 잃었다. 가족에게도 미안하다.

SPORTS2.0 제 31호(발행일 12월 25일) 기사

최민규 기자

ⓒmedia2.0 Inc. All rights reserved.

무단전재 및 재배포시 법적 제재를 받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