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 24호 홈런' 롯데, 5연패 탈출

스포츠 2006.09.17 01:45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이대호 24호 홈런' 롯데, 5연패 탈출
[OSEN 2006-09-16 22:56]

[OSEN=박선양 기자]롯데가 홈런더비 1위 이대호의 시즌 24호 홈런포 등 장타력과 상대 실책에 편승해 최근 5연패에서 탈출했다. 선발 염종석은 5⅓이닝 3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돼 시즌 5승째를 거두며 한화전 6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롯데가 16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2006 삼성 PAVV 프로야구 한화와의 경기에서 홈런포 4방과 선발 염종석의 호투에 힘입어 11-6으로 승리를 거뒀다.

손인호의 연타석 홈런과 이대호의 솔로 홈런에 힘입어 3-2로 접전을 펼치던 롯데는 5회 상대 실책을 파고든 집중력으로 승기를 잡았다. 5회 1사후 황성용의 땅볼 타구를 한화 유격수 김민재가 뒤로 빠트리는 실책을 범하면서 일이 시작됐다. 다음타자 박현승이 한화 선발 정민철로부터 적시 2루타를 터트려 1루주자 황성용을 불러들여 한 점을 보탰다.

계속된 1사 2루에서 이대호의 적시타로 한 점을 추가한 데 이어 호세 2루타와 손인호의 땅볼 타구를 2루수 한상훈이 실책, 3루주자 이대호가 홈인하며 6점째를 뽑았다. 이어 후속타자 강민호가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하며 맞은 만루 찬스에서 정보명이 주자일소 적시 2루타를 터트려 3점을 추가했다. 한화 내야진의 실책 2개가 결정적이었다.

롯데 주장으로 2군에 머물던 손인호는 이날 1군 엔트리에 복귀하자마자 2회와 4회 연타석 솔로 홈런포를 날리며 그동안의 설움을 털어냈다. 이대호도 1-2로 뒤진 4회 선두타자로 나서 좌월 솔로 홈런을 터트려 시즌 24호를 기록했다. 홈런더비 2위 호세와는 2개 차로 벌렸다.

한화는 경기 초반에는 2-1로 앞서며 주도권을 잡았으나 롯데의 홈런포와 내야진의 수비 실책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6회와 7회 1점씩을 뽑은 데 이어 8회 송광민의 투런 홈런 등으로 추격했으나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화 선발 정민철은 4⅓이닝 6실점으로 무너져 시즌 13패째를 기록했다. 최근 4연패에 롯데전 3연승(올 시즌은 2연승)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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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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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리포트] ‘7위 사수’쌍심지 켠 롯데

스포츠 2006.09.17 01:33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BB리포트] ‘7위 사수’쌍심지 켠 롯데
[스포츠칸 2006-09-17 22:12]
‘꼴찌만은 안돼.’

롯데가 남은 시즌 목표를 ‘탈꼴찌’로 설정하고 총력전을 선언했다.

최하위는 면하고 7위 이상의 성적으로 시즌을 끝내겠다는 것이다.

롯데는 지난 2001년부터 4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한 뒤 지난해 5위로 도약했다. 선수단 내의 패배의식과 무기력증에서 벗어날 무렵 올해 다시 꼴찌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이 때문에 롯데의 남은 시즌 초점은 7위 사수에 맞춰졌다. 롯데는 17일 현재 꼴찌 LG에 2게임 차 앞서 있다. 7위 달성이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그리 만만치 않다.

최근 5연패를 당하다 16일 대전 한화전에서 힘겹게 끊는 등 페이스가 썩 좋지 않다. 반면 LG는 최근 KIA·한화·현대 등 상위팀을 잇달아 잡으며 4연승의 신바람을 내고 있다. 당연한 듯 여겨졌던 롯데의 7위 전선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롯데는 필승작전으로 남은 시즌을 운영하기로 했다. 하위팀들은 보통 9월이면 신인급 선수를 많이 기용하며 승부보다는 내년 시즌을 대비하는 경우가 많지만 롯데는 예외다. 설렁설렁 하지 않는다. 손민한·이상목·박현승 등 베테랑들을 중용하며 오직 승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롯데는 16일 대전 한화전에서 5-2로 앞서던 5회초 연타석 홈런을 날렸던 주장 손인호에게 스퀴즈 번트를 시키는 등 승리에 대한 집착을 보인 끝에 5연패에서 탈출했다. 올시즌 꼴찌만은 할 수 없다는 강병철 감독과 롯데 선수들의 눈물겨운 투혼이다.

〈대전|양승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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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아 시구

스포츠 2006.09.16 18:00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야구 좋아하는 여자가 좋아진다....

롯데, '연패 탈출은 화끈하게'

스포츠 2006.09.16 01:29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롯데, '연패 탈출은 화끈하게'
[오마이뉴스 2006-09-16 22:56]    
[오마이뉴스 고동현 기자] 롯데 자이언츠가 5연패에서 탈출했다.

롯데는 16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2006 삼성 PAVV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장단 15안타를 때려내며 폭발한 타선에 힘입어 11-6으로 승리하며 연패탈출에 성공했다.

손인호·정보명 6안타 합작하며 팀승리 이끌어

▲ 올시즌 최고의 활약을 선보인 롯데 손인호
ⓒ2006 롯데 자이언츠
롯데는 전날까지 5연패를 기록하며 최하위에 쳐져있는 LG에도 2게임차로 쫓기는 신세가 됐다. LG가 KIA, 한화 등을 연파하며 4연승을 달렸기 때문. 5연패를 당하는 동안 총 4득점에 그쳤던 롯데타선은 이날 경기에서 그동안 쌓아놨던 힘을 폭발시키며 막강한 공격력을 선보였다.

포문은 이날 경기의 영웅 손인호가 열었다. 손인호는 팀이 0-1로 뒤진 2회초 2아웃 주자없는 상황에 등장해 한화 선발투수 정민철의 공을 받아쳐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솔로홈런을 만들어냈다.

이후 롯데는 한화에 1점을 내줬지만 4회초 이대호의 솔로홈런이 터지며 다시 경기는 2-2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대호는 이 홈런으로 시즌 24호 홈런을 기록하며 홈런 부문 2위를 기록 중인 펠릭스 호세와의 격차를 2개로 벌렸다.

다음 타자 호세가 투수 땅볼로 아웃되고 타석에는 첫 타석에서 홈런을 터뜨렸던 손인호가 다시 등장했다. 손인호는 볼카운트 0-1 상황에서 정민철의 2구째를 받아쳐 또다시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솔로홈런을 터뜨려 경기는 다시 롯데가 3-2로 앞서 나갔다.

손인호는 올시즌 롯데의 주장을 맡으며 당차게 시즌을 시작했지만 전날까지 홈런없이 타율 .211, 11타점만을 기록하며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날은 동점홈런과 경기의 승부를 가르는 홈런을 때려내며 모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4회까지 홈런으로만 득점을 올린 롯데는 5회초부터 본격적으로 공격력이 폭발했다. 롯데는 한화 수비진의 실책 2개를 발판삼아 박현승의 좌중간 1타점 2루타와 이대호의 1타점 중전 적시타, 정보명의 우중간을 가르는 3타점 2루타 등으로 6점을 뽑아내며 승기를 굳혔다.

3루수 겸 8번타자로 선발출장한 정보명은 이날 4타수 4안타 3타점의 맹타를 휘두르며 팀승리에 보탬이 됐다. 이후 롯데는 7회에 1점을 더 보태며 여유있게 승리할 수 있었다.

반면 한화는 연달아 하위권들에게 발목이 잡히며 시즌 막판 어려움을 겪게 됐다. 한화는 13일 열린 1위 삼성과의 경기에서 승리했지만 14일 6위 SK, 15일 8위 LG, 16일 7위 롯데에 연이어 패하며 2위 현대와의 게임차를 좁히지 못했다.

한화 선발투수로 등판한 정민철은 5이닝을 채우지 못한 채 대량실점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고, 한화 김인식 감독은 6회부터 선수를 대거 교체하며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덧붙이는 글
[경기결과]
한화 이글스 6-11 롯데 자이언츠

승리투수: 염종석(5승 9패)
패전투수: 정민철(6승 13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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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 7이닝 무실점' 현대, 롯데 꺾고 4연승

스포츠 2006.09.16 01:08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김수경 7이닝 무실점' 현대, 롯데 꺾고 4연승
[OSEN 2006-09-15 21:47]

[OSEN=박선양 기자]현대 우완 선발 투수 김수경이 진가를 발휘했다. 시즌 초반 부상으로 공백을 가진 뒤 5월말 1군 무대에 복귀해 선발로 등판했으나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하던 김수경이 안정된 구위를 선보이며 팀의 4연승을 이끌었다.

현대가 15일 수원구장에서 열린 2006 삼성 PAVV 프로야구 롯데와의 경기서 선발 김수경의 호투와 강병식의 홈런포에 힘입어 8-0으로 완승을 거뒀다. 이로써 2위 현대는 최근 4연승으로 1위 삼성에 2게임 차로 바짝 추격했다.

이날 경기는 현대가 초반부터 4연패로 침체에 빠진 롯데를 압도했다. 1회말 1사 1, 3루에서 정성훈의 2타점 적시 2루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기선을 잡은 현대는 2회 선두타자 김동수의 안타와 상대 실책에 편승해 한 점을 추가한 데 이어 3회에도 김동수의 적시타로 한 점을 보태며 4-0으로 앞서나갔다. 현대는 선발 김수경이 7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롯데 타선을 잠재우는 가운데 7회말 공격서 송지만의 적시타로 한 점을 추가해 승기를 잡았다.

상승세를 탄 현대는 8회말에는 강병식이 롯데 구원투수 노장진으로부터 스리런 홈런포를 터트려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올 시즌 종료 후 ‘FA 대박계약’을 노리고 있는 현대 선발 김수경은 7이닝 3피안타 2볼넷 7탈삼진 무실점으로 쾌투, 시즌 4승째를 올렸다. 타선에서는 노장 김동수와 베테랑 송지만 3안타로 분전했고 강병식이 2안타 3타점으로 공격을 주도했다.

롯데는 선발 이상목이 2.2이닝 4실점으로 부진한 투구를 펼치며 조기강판, 5연패의 늪에 빠졌다. 공격에서도 현대 선발 김수경에 막혀 힘을 쓰지 못한 채 완패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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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내가 잘쳐서 이겨야 진정한 1등"

스포츠 2006.09.15 16:27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이대호, "내가 잘쳐서 이겨야 진정한 1등"
[스포츠조선 2006-09-15 12:04]    
이대호"내가 잘 쳐서 이겨야 진짜 1등"
최근 5경기서 2할5푼…홈런 타점도 잠잠

각종매체 인터뷰 요청에 정신적 피로감도

타순 3번 전진배치 "트리플크라운 GO~"

이대호 <스포츠조선DB>
 "내가 잘 쳐서 이겨야 진정한 1등이죠."

 '지뢰 찾기'나 '카드놀이'처럼 간단한 게임에도 단계와 난이도가 있다.

 롯데 이대호는 컴퓨터게임으로 치면 지금 마지막 단계에 진입했다. 난이도는 당연히 '최고급'이다. 목표는 변함이 없다. 타격 3관왕(타율-홈런-타점 1위)은 물론 한발 더 나아가 최다안타와 장타율까지 포함한 '꿈의 5관왕'을 노리고 있다. 타율(3할4푼3리)과 타점(80개), 홈런(23개), 장타율(5할8푼3리) 등 4개 부문에선 부동의 1위다. 안타는 KIA 이용규(135개)에 이어 2위(130개). 그러나 최근 5경기 타율은 2할5푼(16타수 4안타)이다. 이 기간에 홈런도, 타점도 없었다.

 이대호는 14일 수원 현대전을 앞두고 "요즘 많은 분의 기대와 관심이 조금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각종 매체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면서 집중력 저하와 정신적인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훈련시간이나 경기 개시 직전에 선수를 불러내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대는 경우도 있었다. 선수 입장에선 고맙지만 '본업'에 지장을 줄 수도 있는 문제다.

 2005시즌 투수 부문 2관왕(다승, 방어율 1위)에다 정규시즌 MVP까지 차지했던 팀 선배 손민한도 지난해 이맘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 손민한은 이대호에게 "다른 것은 전혀 신경 쓰지 말고 네가 할 일만 다 하면 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스스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마인드 컨트롤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게임의 난이도 역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지고 있다. 이젠 어느 투수도 이대호에게 좋은 공을 주지 않는다. 9월 들어 매주 더블헤더가 포함된 7경기를 치러야 하는 강행군도 만만치 않다. 시즌 내내 붙박이 4번 타자였던 이대호는 13일 마산 두산전부터 3번으로 자리를 옮겼고, 펠릭스 호세가 4번이 됐다. 최근 들어 상대 배터리가 이대호를 볼넷(또는 고의4구)으로 내보내는 일이 많아지자 정면승부를 유도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실제로 이대호는 9월 들어 치른 13경기서 4사구 10개를 기록 중이다.

 롯데 김무관 타격코치는 "슬럼프는 단기간 내에 극복하는 게 관건이다. 이런 상황이 절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요즘엔 일부러 타격에 관해선 별 얘기 안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시즌 이대호의 '연속경기 무안타 기록'은 겨우 3경기다.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단 사흘간 안타가 없었을 뿐이다. 그 외엔 하루 또는 이틀이면 곧바로 타격감을 되찾았고, 어김없이 안타를 쳤다.

 이대호는 "타율에선 택근이형이, 타점에선 양준혁 선배가 바짝 쫓고 있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겠다. 내가 잘해서 이겨야 진짜 1등"이라고 다부지게 말했다.

 롯데는 14일 현재 106경기를 마쳤다. 남은 일정은 정확히 20경기.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이 고비만 넘으면 '영웅'이 된다. < 곽승훈 기자 european@>

◇이대호 월별 성적 추이(14일 현재)
구분
4월
5얼
6월
7월
8월
9월
경기수
18
21
21
12
18
13
103
안타
23
18
28
15
27
19
130
2루타
6
1
5
1
6
3
22
홈런
2
3
8
4
2
4
23
타점
15
6
24
8
15
12
80
4사구
5
9
13
6
6
10
49
삼진
13
14
7
4
6
4
48
타율
0.324
0.254
0.389
0.319
0.375
0.413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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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군입대 선수 대거 복귀 '기대만발'

스포츠 2006.09.15 16:26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롯데, 군입대 선수 대거 복귀 '기대만발'
[스포츠서울 2006-09-15 14:02]
[스포츠서울] 롯데 팬들은 내년에는 큰 기대를 가져도 좋다. 2년전 군에 입대한 롯데 선수들이 내년 대거 8명이나 복귀해 한층 두꺼워진 선수층을 형성해 경쟁력 있는 팀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내년 군 제대 복귀 재목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사이드암 투수 임경완(31)과 우완투수 김사율(26). 외야수 김주찬(26). 포수 허일상(27) 등이다.

임경완은 입대 전이던 04년 4승6패 5세이브 22홀드 방어율 3.16을 기록하며 ‘홀드왕’을 차지해 확실한 셋업맨으로 활약했다. 임경완의 복귀는 롯데의 허약한 불펜진을 보강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1999년 입단 당시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던 김사율도 불펜에 합류할 예정. 임경완과 김사율은 올 11월 제대한다. 내년 4월 복귀하는 김주찬은 발이 빠르고 어깨도 좋은 전천후 외야수다. 삼성에서 롯데로 이적한 01년 타율 0.313으로 기대를 모았던 그는 입대 전인 04년 120경기에 출장해 타율 0.242. 7홈런 42타점 44도루를 기록했다. 롯데가 2007 신인드래프트에서 외야수를 한 명도 보강하지 않고 투수와 내야수 위주로 선발한 것도 김주찬의 합류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단국대 시절 국가대표를 지낸 허일상은 타격은 아직 미완이지만 투수 리드만큼은 수준급 포수다. 올해 강민호가 홀로 힘겹게 지킨 안방 살림을 도와줄 백업 포수로 충분히 제몫을 해줄 선수다.

이밖에 묵직한 직구를 구사하는 투수 허준혁(21)과 내야수 문규현(24). 외야수 이인구(26)와 심제훈(28) 등도 연말과 연초 속속 팀에 복귀한다. 투수 김장현(28)과 내야수 조성환(30)은 내년 말에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다.

박정욱기자 jwp94@

현대, 롯데 잡고 3연승 '선두 삼성에 한발 더 추격'

스포츠 2006.09.14 22:59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현대, 롯데 잡고 3연승 '선두 삼성에 한발 더 추격'
[마이데일리 2006-09-14 21:55]
[마이데일리 = 이석무 기자] 현대가 롯데를 제물로 선두탈환의 의지를 더욱 불태웠다.

현대는 14일 수원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와의 경기에서 선발 전준호의 호투와 타선의 효과적인 공격을 앞세워 5-2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현대는 최근 3연승을 달리며 이날 경기가 없었던 선두 삼성과의 승차를 2½경기차로 좁혔다. 반면 롯데는 4연패에 빠졌다.

1회 양팀은 2점씩 주고받으며 초반부터 활발한 접전을 예고했다. 1회초 롯데는 1사후 황성용이대호가 연속 몸맞는공으로 출루한 뒤 호세와 강민호의 적시타가 터지면서 먼저 2점을 선취했다.

하지만 현대는 곧바로 1회말 반격에서 곧바로 2점을 만회했다. 송지만의 안타와 이택근의 볼넷 등으로 2사 1,3루 기회를 만든 뒤 정성훈의 2타점 2루타로 주자 2명을 모두 불러들인 것.

활발한 타격전으로 전개될 것 같던 양팀의 경기는 2회부터 한동안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2-2 동점 균형이 깨진 것은 5회말 현대 공격때. 현대는 5회말 반격에서 1사후 전준호가 우익수 옆을 가르는 2루타로 출루한 뒤 투수 와일드피치로 3루까지 진루에 득점찬스를 잡았다. 이어 이택근의 좌전안타까지 이어지면서 현대는 3-2로 한점 앞서나가는데 성공했다.

리드를 잡은 현대는 7회말 서튼의 2점짜리 쐐기포로 롯데의 추격의지를 꺾고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이날 현대 타선은 롯데보다 2개 적은 6안타를 기록했지만 사사구 6개와 효과적으로 결합해 5점을 뽑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반면 롯데는 8안타 6사사구를 얻고도 2득점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현대는 3-2로 앞선 7회초 수비때 2사 만루 역전 위기에 몰렸지만 롯데 김승관의 빨랫줄 같은 타구를 유격수 차화준이 멋진 다이빙캐치로 잡아내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이날 경기전까지 12승3패로 승률 1위(.800)를 달린 현대 선발 전준호는 6이닝 동안 7안타 2실점으로 역투해 시즌 13승째를 거두며 승률 선두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특히 같은 날 승률 2위인 한화 류현진이 SK전에서 패전투수가 돼 큰 이변이 없는 한 전준호의 승률 1위 등극은 굳어졌다. 전준호는 이날 승리로 승률 .813를 기록한 반면 류현진은 승률이 .739로 떨어져 2위자리를 KIA 김진우(10승3패 승률 .769)에게 내줬다.

한편, 광주구장에서는 LG가 연장접전 끝에 갈길 바쁜 KIA의 발목을 잡았다. LG는 1-1 동점이던 10회초 이병규와 최길성(2타점)의 연속 적시타로 KIA에 4-1 승리를 거뒀다.

[롯데전에서 6이닝 2실점 역투로 시즌 13승째를 거둔 현대 전준호. 사진〓마이데일리 DB]

(이석무 기자 smle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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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타격 3관왕 이대호 "타점왕이 제일 탐나"

스포츠 2006.09.14 21:13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프로야구> 타격 3관왕 이대호 "타점왕이 제일 탐나"
[연합뉴스 2006-09-14 19:09]

(수원=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한국 프로야구 사상 22년 만의 타격 `트리플 크라운' 기대를 부풀리고 있는 `토종 거포' 이대호(24.롯데)가 개인 타이틀과 관련한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이대호는 14일 수원구장에서 현대와 원정경기에 앞서 "요즘 타격 3관왕 이야기가 많이 나와 부담이 크다. 타석에 오를 때마다 신경을 쓰다 보면 생각이 많아져 슬럼프도 찾아오고 타격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현재 수위타자(타율 0.345)와 함께 홈런(23개), 타점(80개), 장타율(0.586) 등에서 1위인 이대호는 지난 1984년 이만수 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치(당시 삼성)에 이어 역대 두 번째 타격 3관왕(홈런.타점.타율)을 가시권에 두고 있지만 최근 5경기에서 홈런 1개 등 타율 0.294로 방망이가 다소 무뎌졌다.

이대호는 이어 "3관왕 타이틀 중 가장 힘든 건 타격왕인 것 같다. 하지만 타점왕은 꼭 하고 싶다"며 클러치히터의 상징인 타점왕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지난 해 기록했던 80타점 고지를 이미 밟았고 현재 부문 2위 양준혁(삼성.77타점)을 3개 차로 따돌리고 선두를 달리고 있다.

롯데 창단 사상 첫 홈런왕 가능성에 대해서는 "열심히 치다 보면 성적은 자연히 따라오게 돼 있다. 홈런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많이 치는 것이니 큰 욕심은 없고 2개 더 쳐 25개를 채우고 싶다. 특히 홈팬들이 응원해 주는 사직구장에서 홈런을 치기가 가장 편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6년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뽑혀 태극마크를 달고 대회 3연패에 도전하는 각오도 밝혔다.

드림팀 내 장성호(KIA)와 1루수 포지션이 겹쳐 3루수 출장이 예상되는 그는 "작년 3루수로 뛰다 올 해 1루로 자리를 바꾸면서 수비 부담이 적어져 타격이 좋아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표팀의 3루수로 기용되면 몸을 아끼지 않겠다. 연습을 하다 보면 실력도 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표팀 중심 타선이 약하다는 지적과 관련, "그런 소리가 나와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병역 문제가 해결된다면 여자 친구와 결혼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chil881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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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해설가, 그들은 누구인가?

스포츠 2006.09.14 14:27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야구 해설가, 그들은 누구인가?
[스포츠2.0 2006-09-13 20:01]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베이스볼 아나운서 윤길구입니다. 지금부터 경기중학과 동산중학의 게임을 전국에 방송해 드리겠습니다. 생각하면 서글펐던 36년. 압제와 질곡의 36년을 털어 버리고 해방의 감격을 맞은 지도 벌써 1년 1개월. 일제의 간악한 마수가 우리 손에서 빼앗아 가버린 마이크를 되찾은 지도 어언 13개월. 이제 이 은총의 순간을 맞아 경건한 마이크 앞에 다시 서니 한줄기 감회와 함께 무한한 희망이 가슴에 용솟음칩니다. 오늘 이 중계를 시작으로 앞으로는 자주 여러분을 위한 스포츠 중계를 해 드리기로 약속 올립니다. 제1회 전국중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 준준결승전이 벌어지고 있는 이곳 경성 스타디움에는 때마침 일요일을 맞아 외야 언덕에까지 입추의 여지없는 대관중이 들어찼습니다.”
/윤길구 아나운서(가운데)는 해방 뒤 최초의 야구 중계를 맡은 역사적인 방송인이다.(한국스포츠사진연구소)

- 조선방송협회 서울중앙방송국 윤길구 아나운서, 1946년 9월 15일 -

원로 스포츠기자 조동표는 “해방 전에도 야구 중계는 있었다. 그러나 해설가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최초로 방송 중계된 야구 경기는 1927년 9월 열린 경성실업야구연맹전이다. 그해 2월 16일 개국한 국내 최초의 방송국인 경성방송국(호출부호 JODK)은 이 대회를 유선으로 중계했다. 중계 횟수가 1929년 6월까지 13회, 1930년 4~10월에 70회였으니 인기 종목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당시 성인야구나 고교야구의 주역은 일본인이었다. ‘한국의 베이브 루스’ 이영민과 강속구 투수 오윤환 등이 활약하기도 했지만 예외일 뿐이었다. 일제시대 성인야구팀에는 일본대학야구 최고봉인 6대학 리그 출신 선수들도 많았다. ‘식민지 근무 수당’이 붙은 조선 근무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스포츠에 국경은 없다지만 ‘일본인들을 위한 경기’에 한국인들의 관심이 컸을 리 없었다.

학생야구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1915년부터 열린 전국중등학교 우승야구대회(현 고시엔대회)에 조선학교도 출전할 수 있었지만 매번 1, 2회전에서 탈락하는 전력이었다. 그나마 본선 출전교 대부분은 일본인학교였다. 한국인팀으로 가장 좋은 성적은 1923년 휘문고보(현 휘문고교)가 기록한 8강(1차전 부전승, 2차전 만주대표 대련상업에 9-4 승리)이다. 이 대회에 우익수로 출전했던 이순재 전 대한체육회 총무이사는 “그때는 고시엔구장이 지어지기 전이라 나루오(鳴尾) 구장에서 대회가 열렸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해설가 1세대

해방 뒤 최초의 야구 중계는 1946년 9월 청룡기 전국중등학교선수권대회다. 조선방송협회 서울중앙방송국(현 한국방송공사 KBS)이 라디오로 대회 5일째인 9월 15일 경기중학(현 경기고교)과 동산중학의 준준결승 마지막 경기를 중계했다. 뒷날 ‘아시아의 철인’으로 이름을 날린 박현식 삼미 슈퍼스타스 초대 감독이 동산중 선발, 일제 시대 맥이 끊겼던 경기고 야구부를 부활시킨 주역 김영제가 상대 선발이었다.

지난 2001년 ‘방송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윤길구 아나운서가 해방 뒤 첫 야구 중계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첫 야구 중계이자 첫 스포츠 중계였다. 그러나 당시 윤아나운서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나운서 혼자 경기를 책임지는 단독 중계였다.

1954년 12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는 한국야구가 최초로 치른 국제 대회다. 최초로 해외에서 생중계된 야구 경기기도 하다. 마이크를 잡은 아나운서는 윤길구와 황우겸. 지금으로 치면 한명이 캐스터, 다른 한명이 해설가 역할을 맡았다. 황우겸은 1946년 윤길구가 해방 뒤 첫 야구 중계를 했던 경기에서 동산중 선수로 뛰었으니 묘한 인연이었다. 그는 1951년 중앙방송국에 입사했다.

/고교야구의 인기는 야구 해설가라는 직업을 낳은 원동력이었다.(한국스포츠사진연구소)

그때는 ‘야구 해설’이라는 장르 자체의 의미가 희박했다. 아나운서가 경기 상황을 라디오 청취자들에게 단순 전달하는 게 초창기 야구 중계 방식이었다. KBS SKY의 유수호 아나운서는 1969년 동양방송(TBC)에 입사해 1970년부터 야구 중계를 시작했다. 유아나운서는 “야구는 축구나 농구와는 달리 쉬는 시간이 많은 경기다. 이 때문에 아나운서를 보조할 해설가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초의 야구 해설가는 연세대 감독을 지낸 손희준으로 알려져 있다. 손희준은 1946년 조선야구협회(현 대한야구협회) 창설 때 발기인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삼성 라이온즈 김응용 사장에게 ‘코끼리’라는 별명을 지어준 사람이 그다. 1942~1944년 일본프로야구 한큐 브레이브스에서 포수로 38경기에 뛴 유완식도 해설가 1세대에 속한다. 그는 1964년 경기도 전국체육대회 때 동아방송(DBS) 해설가로 처음 마이크를 잡았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전속 해설가는 없었다. 방송국 PD와 안면이 있는 인사가 그때그때 투입되는 식이었다. 예를 들면 1962년 자유중국(대만)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때는 야구협회 허곤 이사가 해설가로 기용했다. 캐스터는 KBS 박종세 아나운서. 박아나운서는 1961년 5?16 쿠데타 때 ‘혁명공약’을 방송했던 사람이다.

이 무렵 해설의 전문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유완식은 동산고가 대구상고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1966년 청룡기 결승전 때 “동산고가 우승할 줄 알았던 사람은 하느님뿐일 것”이라는 마무리 코멘트를 했다. 유완식은 1997년 <스포츠서울> 이종남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해설도 공부하고 훈련해야 하는 것인데 무조건 마이크만 잡았다”며 자책했다.

<한국일보>의 장기영 사장은 1958년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구단을 초청한다는 파격적인 구상을 했다. 당시 한국일보의 유일한 체육 기자였던 조동표는 8월 7일 자 신문에 카디널스를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언론사에서도 등 텔렉스로 수신하던 통신사 기사를 제외하면 해외 주둔 미군들에게 배포되던 <성조지>가 거의 유일한 ‘외신’인 시절이었다.

조동표는 미국 유학 경험이 있는 서울대 모 교수를 찾아가 세인트루이스 팀에 대한 취재를 했다는 후문이다. 실은 이 교수도 내셔널리그 팀이 없는 도시에서 유학을 해 카디널스의 경기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1960년대 한 방송국 아나운서가 고교대회 중계 도중 모교에 대한 사랑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 **고가 이겼습니다”라고 말해 자리에서 물러난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고교야구와 전속 해설가

최초의 전속 해설가는 1965년부터 TBC 해설위원으로 활약한 서동준이다. 서동준은 1953, 54년 인천고가 청룡기대회에서 2연속 우승할 때 주역이었다. 그는 최초의 전후 야구 스타로 손꼽힌다. 첫 해외 야구 중계 방송이 이뤄진 1954년 마닐라 아시아선수권대회 때는 고교 3년생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당시 대표팀의 주력 투수는 나중에 해설가로 데뷔하는 유완식을 비롯해 김양중과 박현식 3명이었다. 홍안의 서동준은 자유중국(대만)과의 3차전에 등판해 승리를 따내지는 못했지만 6이닝 2실점(1실점)으로 호투해 한국야구 최초의 국제대회 승리(4-2)의 주역이 됐다. TBC 아나운서로 서동준과 호흡을 맞췄던 유수호는 그의 해설에 대해 “명투수 출신이라 타자와의 승부를 설명하는 데 능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감정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해설이 인상적이었다”고 평했다.

전속 해설가의 등장은 민영 방송의 탄생과 맞물려 있다. TBC는 1964년 5월 라디오 방송으로 출범해 그해 12월 최초의 민영 텔레비전 방송인 TBC-TV를 개국했다. 고교야구가 국민적인 스포츠로 자리잡던 시기였다. 유아나운서는 “당시는 방송 시간에 제한이 있던 때였다. 그래도 고교야구 준결승, 결승전은 낮경기 방송이 허가됐다. 워낙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승전은 예외없이 관중들로 가득 찼으며, 시청률은 30%대를 웃돌았다”고 말했다.

/1962년 대만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때는 박종세 아나운서(앞줄 오른쪽)가 캐스터, 허곤 대한야구협회 이사(앞줄 왼쪽)가 해설을 맡았다.(한국스포츠사진연구소)

라이벌인 DBS는 한국전력 감독을 지낸 김계현을 전속 해설가로 영입해 맞불을 놓았다. 서동준이 최초의 TV 전속 해설가였다면 김계현은 최초의 라디오 전속 해설가였다. 그는 마산상고를 수석으로 졸업한 당대의 인재였다. 별명은 ‘한국의 미즈하라 시게루’였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장훈이 뛰었던 도에이 플라이어스의 감독을 지낸 당대 일본프로야구 명장과 비견됐다. 경남 마산 출신인 그의 해설은 신사다운 성품답게 조용조용했으며 냉철했다고 한다.

서동준과 김계현의 등장은 야구가 산업화된 방송과 결합된 초기 모습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해설가는 직업이라기 보다는 명예직에 가까웠다. 서동준은 “처음 받은 전속 해설료가 월 7천 원 정도였다. 지금 돈으로는 20만 원 정도일 것”이라고 회상했다.

풍규명, 이호헌도 고교야구 시대를 주름 잡았던 해설가다. 본명인 이정렬인 이호헌은 대한야구협회 공식기록원으로 처음으로 야구표준기록을 도입했고, 실업연맹 사무국장 시절 페넌트레이스 제도를 들여 온 야구 행정의 선구자다. 그는 뒷날 이용일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과 함께 프로야구 창설을 주도했다. 당시로서는 드문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해설이 특징이었다. 중고야구연맹 사무국장을 지낸 풍규명은 1980년대 스타 외야수 이해창의 장인이다. 술을 즐겼던 호인으로 중계 방송 때는 반드시 소주 반 병을 마셨다고 한다. 적당히 얼큰해진 얼굴로 “선린상고에는 김씨가 5명 있습니다. 신일고 선수들의 성은 제각각이군요. 김씨들이 단합해 ‘각성바지’ 신일고를 물리치지 않을까요”라고 선수 소개를 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스타일은 다소 달랐지만 풍규명도 이호헌처럼 서울시 고교연맹 공식 기록원으로 일했다. 이들은 기록에 기반한 해설로 신선함을 불러 일으켰다.

야구 기록의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 시절 야구 중계에 기록을 활용한다는 발상 자체가 신선했다. 한 대회를 치르면서도 선수들의 누적 기록은 아나운서나 기자들이 ‘알아서’ 했던 시절이었다. 유수호는 “요즘 해설이 분석적이라면 과거 해설은 감성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서동준은 “당시 해설가들은 비판적이었다. 경기를 잘못 한 감독이나 선수를 질타하는 식의 해설을 자주 했다. 방송국에서도 기술적인 설명을 크게 요구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해설가가 감독을 물러나게 할 수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조해연, 김병우, 장철현, 박상규 등도 이 시기 해설가로 활약했다.

군사 정권 시절 고교야구 중계도 검열 대상이었다. TV 중계가 가능한 요일과 시간대도 정해져 있었다. “지역색을 드러내는 발언을 하지 말라”는 중앙정보부의 지침이 중계석에까지 내려와 있었다. 서동준은 “각서에 도장도 여러 번 찍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군산상고와 경북고가 결승전을 벌여도 아나운서나 해설가는 ‘영남’ ‘호남’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했다. 서동준이 물러난 뒤 TBC가 후임 해설가를 찾을 때 첫번째로 든 기준이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 사람’이었을 정도다.

스타 해설가 김동엽

19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 아마도 최초일 ‘스타 해설가’가 등장한다. ‘빨간 장갑의 마술사’로 불렸던 김동엽 전 해태 타이거즈 감독이다. 김동엽은 자서전 제목인 <그래, 짤라라 짤라>처럼 감독직에서 해임되는 게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는 1978년 성균관대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TBC에서 해설을 맡았다.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시원시원하고 거침없는 언변이 그의 특징이었다.

하일성 KBO 사무총장은 “격투기로 치면 이론에 강했던 이호헌 씨는 태권도식 해설을 했다. 김동엽 씨는 막싸움 스타일이었다”며 “1988년이었던가, 김동엽 씨가 ‘말을 조리있게 하되 해설을 공격적으로 하라. 승부를 건다는 심정으로 과감하게 경기를 예상하라’고 조언했다. 그 뒤 내 해설 스타일이 변했다”고 말했다.

/1958년 8월 7일자 <한국일보>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방한 소식이 크게 실려 있다.(한국스포츠사진연구소)

그는 얼마 뒤 KBS로 자리를 옮겼다. KBS는 그에게 월 30만 원의 급여를 보장했는데 당시 KBS 10년차 기자 급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TBC 시절 급여는 월 12만원이었다. 한국 방송사와 야구사를 통틀어 최초의 ‘해설가 스카우트 파동’이었던 셈. 야구의 인기 상승과 더불어 해설가의 지위도 그만큼 올랐던 것이다.

김동엽은 야구계에서 기인으로 알려졌으며 아마추어 시절부터 혹독한 훈련으로 선수들과 갈등을 빚었다. 1968년 대한체육회 코치 아카데미 수료를 평생의 자랑으로 삼았고, 1979년에는 40살의 나이에 한양대 3학년에 편입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 그는 1987년 MBC 청룡을 끝으로 감독 일선에서 물러났고, 선수들의 병역 관련 발언이 문제가 돼 1994년 서울방송(SBS)에서 마이크까지 놓았다. 1997년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변사체로 발견돼 주위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 야구사에서 명장은 많았지만 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감독은 드물었다는 점에서 김동엽은 쉽게 잊혀지지 말아야 할 사람이다.

하일성과 허구연

1982년 프로야구의 출범은 야구 중계를 변모시켰다. 유수호는 “지난해 한국시리즈 시청률이 12%를 넘기자 방송계에서는 ‘대박’이라고 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는 페넌트레이스 경기 시청률이 8~12%를 상회했다”고 말했다. 지금 지상파 프로야구 중계 시청률은 3%를 좀체 넘지 못한다.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떠오른 해설가가 바로 KBS의 하일성과 MBC의 허구연이다. 하일성은 환일고 체육교사 시절인 1979년 TBC에서 방송 해설을 시작했다. 유수호는 “서동준 씨 후임이 마땅찮던 차에 배구 해설가 오관영 씨가 하일성 씨를 추천했다”고 말했다. 성동고 시절 유격수로 활약했지만 야구계에서는 당시까지 무명이었다. 마당발로 통했던 풍규명 정도가 하일성이라는 사람을 알아봤을 정도였다.

하일성과 허구연은 1980년대 이후 오랫동안 야구 해설계를 양분했다. ‘친화력의 하일성’과 ‘이론의 허구연’은 팬들이 두 사람을 나누는 방식이다. 야구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데는 아직 하일성을 따를 해설가가 드물다는 게 방송계의 평가다. 그러나 초창기 하일성은 ‘전문적인 해설’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전까지 해설가들은 직업을 따로 갖고 해설을 겸업했다. 서동준의 경우도 해설을 그만 둔 이유가 한일은행 지점장으로 영전해 겸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기억력이 뛰어난 하일성은 야구 규칙을 외우다시피 하며 해설을 준비했다. 야수선택이나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규정을 야구 규칙 몇 조 몇 항까지를 들어가며 설명한 첫 해설가가 하일성이다.

프로야구는 고교야구와는 달리 장기 페넌트레이스를 펼친다. 5공화국 시절이라 정책적으로 TV의 프로야구 편성도 잦았다. 시청자들과의 접촉이 많아지다 보니 인기 해설가는 방송 시청률을 좌우할 수도 있게 됐다. 인기 해설가들의 등장은 아나운서 중심 중계가 해설가 중심 중계로 변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론 종사자인 아나운서는 ‘사실 전달’이 우선이다. 초창기 야구 중계 때는 “아나운서는 절대 흥분하면 안 된다. 상황 전달에 충실해야 한다”라는 격언도 있었다. 그러나 라디오에서 TV 시대로 접어들며 ‘사실 전달’의 비중은 줄어들게 됐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하일성을 ‘TV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해설가’로 꼽는다. 하일성은 이를 ‘시청자들의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해설’로 설명한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허구연도 하일성처럼 이전 해설가들과는 달랐다. 그는 고려대에서 4번타자를 지냈고 법학전공 학사 학위를 받은 경력의 소유자다. 뒷날 프로야구 감독과 코치, 미국 마이너리그 팀의 코치 경험까지 더해 야구계에서 가장 다채로운 경험을 한 사람으로도 꼽힌다.

/KBS의 전신인 서울중앙방송국(호출부호 HLKA)의 야구 중계 방송 장면.(한국스포츠사진연구소)

방송 해설가로서 허구연이 갖는 의미는 한국야구의 변화 발전 과정과 닿아 있다. 공식적인 ‘한국야구의 아버지’는 미국인 선교사 필립 L. 질레트다. 그러나 야구의 틀이 잡힌 때는 일제 시대다. 1960년 출범한 실업야구는 여러 은행들이 주축이 됐는데 일제 시대 금융기관에서 성인야구팀을 운영했던 전통과 무관치 않다. 프로야구 출범 뒤인 1985년 삼성이 LA 다저스의 스프링캠프인 베로비치 다저타운을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야구는 본격적으로 미국야구를 받아들였다. 허구연은 삼성보다 1년 앞선 1984년 문화방송 해설위원으로 다저 타운을 찾은 인물이다. 1987년 청보 핀토스 감독에서 물러난 뒤인 1990년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유급 순회코치로 뛰기도 했다.

방송 초기 허구연은 ‘베이스 온 볼스’ ‘히트 바이 피치’ ‘브레이킹 볼’ 등 미국식 용어를 자주 이용해 언론들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했다. 허구연은 “공사판에서 일본말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의식적인 노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야구장에서는 일본식 용어가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야구 용어 정비를 해설 활동의 가장 큰 보람으로 삼고 있다. 이전과 달리 감독이나 선수를 질타하는 ‘비판적 해설’이 줄어든 것도 허구연의 영향으로 꼽힌다.

그는 TBC를 거쳐 1982년 31살에 MBC 전속 해설위원이 됐다. 이 계약은 사상 최초의 해설가 연봉 계약이었다. 원래 허구연은 2,200만 원을 요구했는데 당시 KBO가 정한 박철순, 김봉연 등 특급 선수들의 연봉과도 같은 액수였다. 그의 논리는 “훌륭한 해설을 위해서는 방송국이 투자를 해야 한다”였다. 지금도 “후배 해설가들이 해설에만 전념할 환경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After…

2006년 KBO 야구 수첩에 등재된 각 방송사 전속 해설 위원은 이용철(KBS) 허구연(MBC) 박노준(SBS) 윤정현(PBC) 이길환(원음방송) 김용수(KBS SKY) 양상문, 한만정(이상 MBC ESPN) 김광철, 강태정, 이광권, 김상훈(이상 SBS 스포츠) 등이다. 지역 방송에서는 올해 5월 1천 경기 연속 중계 기록을 세운 이성득(KNN), 배대웅(대구방송) 등이 활약하고 있다. 여기에 경기마다 수당을 받는 비전속 해설가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하지만 아직 해설가협회 등의 모임은 없다. 급여는 대다수가 3천만~5천만 원대다.

국내에 메이저리그가 중계됨에 따라 송재우, 이종률 등 비야구인 출신 해설가, 현직 기자 해설가도 등장했다. 이들은 실전 경험은 없지만 경기인 출신들이 약한 풍부한 해외야구 정보가 강점이다. 하일성은 “시청자들에게 야구라는 경기를 다양한 측면에서 보여줘야 한다. 비야구인 출신 해설가들의 등장은 그래서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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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2G 연속 롯데 셧아웃 '4위 탈환'

스포츠 2006.09.14 00:49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두산, 2G 연속 롯데 셧아웃 '4위 탈환'
[OSEN 2006-09-13 21:53]

[OSEN=김영준 기자] 김경문 두산 감독의 승부수가 주효했다. 이혜천에 박명환까지 투입하는 총력전을 불사한 두산이 롯데를 2경기 연속 셧아웃시켰다. 이에 따라 두산은 KIA를 0.5경기차로 제치고 숙원의 4위 진입에 성공했다.

두산은 13일 롯데와의 마산 원정경기에 좌완 이혜천(5이닝 무실점)-우완 박명환(2⅔이닝 무실점)-마무리 정재훈(1⅓이닝 무실점)을 투입하는 필승 계투진을 가동, 2-0 승리를 따냈다. 전날 리오스(8이닝 무실점 11탈삼진)을 앞세워 6-0 영봉승을 거뒀던 두산은 13일에도 단 4피안타로 롯데 타선을 압도했다.

롯데 역시 에이스 손민한을 내세웠으나 5회와 8회 1실점하면서 7⅔이닝 2실점으로 시즌 6패(10승)째를 당했다. 손민한은 9안타에 볼넷 5개를 내주면서도 탁월한 위기 관리 능력으로 실점을 피해나갔으나 두산 톱타자 이종욱의 발을 막지 못했다. 이종욱은 5회 볼넷으로 출루한 뒤 3루 도루 성공과 이어진 홍성흔의 우익수 희생플라이 때 결승점이자 선제득점을 올렸다.

또한 이종욱은 좌익수 수비에서도 이어진 5회말 안타를 치고 2루까지 파고 든 강민호를 잡아냈다. 이에 힘입어 이혜천은 5이닝(2피안타 1볼넷)만 던지고 시즌 6승(6패)째를 따내게 됐다.

김경문 감독은 8회초에도 선두타자 홍성흔이 2루타를 치고 나가자 후속 정원석에게 보내기 번트를 지시, 승리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냈다. 이어진 1사 1,3루에서 손시헌의 적시 1타점 2루타가 터지면서 두산은 2-0으로 점수를 벌릴 수 있었다.

8회 투아웃 후 등판한 두산 마무리 정재훈은 32세이브째를 성공시켰다. 이날 KIA가 LG에 3-4로 패하면서 두산은 0.5경기 차 앞선 단독 4위로 올라서게 됐다.

sgoi@osen.co.kr

<사진> 이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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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선발 로테이션 초관심, '누가 나오나?'

스포츠 2006.09.14 00:48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롯데 선발 로테이션 초관심, '누가 나오나?'
[스포츠서울 2006-09-13 22:38]
[스포츠서울] 롯데 선발 로테이션이 모든 구단의 관심사가 됐다. 롯데가 시즌 막바지 순위 싸움의 변수로 떠오르자 대결을 앞둔 상대팀들이 롯데 선발 로테이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9~10일 롯데와 2연전을 가진 KIA의 한 코치는 9월 초 롯데 강병철 감독에게 전화를 했다. 일상적 안부전화의 모양새였지만 목적은 선발 투수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감독님. 혹시 손민한 등판이 밀려서 우리와 첫 경기에 나오는 것 아닌가요”라고 은근슬쩍 물었다. 그는 9일 손민한이 아닌 박지철이 등판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쾌재를 불렀다. 손민한을 피하고 싶은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일화이다.

손민한은 7일 SK전에 등판을 했다. 그러자 불만은 SK의 몫이 됐다. 지난 7~8일 롯데에 연거푸 지며 5연패에 빠져 4강 도전이 힘들어진 SK는 7일 손민한의 등판에 볼멘소리를 토해낸다. 손민한이 6일 삼성과 더블헤더에 등판할 순서였는데 순번을 늦춰 SK전에 나왔다는 지적이다. 지난 달 5일 롯데 펠릭스 호세와 SK 신승현의 빈볼 시비에 이은 난투극과 동시 퇴장 등 악연을 쌓은 관계를 떠올리며 ‘SK 죽이기 아니냐’라는 것이다.

이같은 상대팀 움직임에 대해 롯데 강병철 감독은 “선발 순서를 바꿨다는 것은 그쪽의 오해다. 우리는 예정대로 가고 있다. 1주일에 7경기를 치러야해 김수화까지 6인 선발체제로 빡빡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변화를 줄 여유가 없다. 우리 투수들의 구위에 다소 차이가 있어 상대가 관심을 갖는 것이다”고 말했다.

선발투수가 절대적인 것이 야구지만 10승의 손민한 이상목이 던진다고 꼭 이기고 박지철 염종석이 나온다고 지는 것은 아니다. 강 감독은 “KIA가 9일 박지철이 나온다고 좋아하더니 경기는 포기한 우리가 연장 끝에 이겼다. 10일에는 이상목이 나왔는데 초반에 무너져 대패했다. 야구는 모르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롯데는 9월 박지철이 선발 등판한 2경기를 모두 승리했다. 한편 롯데는 14~15일 현대전을 앞두고 선발 로테이션에 작은 변화를 줬다. 현대전에 약한 염종석을 16일 한화전에 8일만에 등판하게 하고 박지철 이상목을 앞당겨 투입할 계획이다.

마산 | 박정욱기자 jwp94@

롯데, 원정 17연패-선발 전원안타 등 '진기록 싹쓸이'

스포츠 2006.09.14 00:47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롯데, 원정 17연패-선발 전원안타 등 '진기록 싹쓸이'
[스포츠조선 2006-09-13 11:22]    
롯데 진기록 싹쓸이
원정 17연패… 선발전원 2안타… 선발전원 삼진
 2006년 '기록의 산실'은 단연 롯데 자이언츠다.

 신기록, 진기록, 대기록이 한데 모였다. 물론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있다.

 롯데 타자들은 지난 12일 마산에서 열린 두산과의 홈경기서 '11K'의 수모를 당했다. 6회말 1사 1루서 4번 이대호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두산 선발 리오스에게 선발 전원 삼진이라는 진기록을 안겨줬다. 선발 전원 삼진은 2004년 10월 5일 KIA 이동현이 한화전에서 작성한 이후 707일 만이며, 통산 19번째다.

 바로 일주일 전인 지난 5일 대구 삼성전에선 '선발 전원 2안타'를 쳤던 롯데다. 96년 OB(현 두산)가 삼성을 상대로 '선발 전원 2안타'를 기록한 이후 무려 10년 만에 나온 진기록이다. 이날 롯데가 친 23안타는 82년 롯데 창단 이후 한 경기 최다안타 타이기록이며, 올시즌 한 팀 최다안타 신기록이다.

 시즌 초반엔 원정 17연패에 시달렸다. 4월 9일 대구 삼성전부터 5월 18일 잠실 LG전까지 원정경기만 골라서 17번을 내리 졌다. 지금도 롯데 관계자들은 "그때 그 연패가 없었다면 지금쯤 4위를 굳혔을지도 모른다"며 아쉬움을 삼키고 있다.

 가슴 설레는 기록도 있다. 홈런 랭킹에서 이대호(23개)와 펠릭스 호세(22개)가 선두를 다투고 있다. 홈런왕은 지난 24년간 한 번도 롯데와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기분 좋은 '집안싸움'이다. 하루빨리 주인공이 가려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대호는 84년 삼성 이만수 이후 22년 만의 타격 3관왕을 향해 순항을 계속하고 있다.

 롯데는 12일까지 104경기를 치러 44승2무58패를 기록 중이다. 현실적으로 4강 진출은 힘들다. 하지만 남은 22경기에서 '경이로운 승률'을 거둔다면 진정한 '2006년의 대기록'을 이룰 수도 있다. < 곽승훈 기자 europ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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