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올스타전

스포츠 2007.07.18 01:39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집안에 일이 있어 가보지는 못했지만

해담선생 정수근이 역전 홈런포로 생에 두번째 올스타전 MVP에 등극 했더군요.

올스타중의 올스타 이대호는 5타수 4안타,,

강민호의 적시안타

민한신은 3이닝 무실점으로

리그 경기에 사직에서 이렇게 좀 하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잘 했더군요.

역시 올스타전 MVP가 되기 위해서는 임팩트 있는 홈런이...

투수가 올스타전 MVP 되는 걸 잘 보지 못했는데 역시 홈런 때문인가 봅니다.

정수근은 오늘을 계기로 야구가 재밌어졌다고 표현했는데,

속은 타들어가고 겉으로는 그걸 어떻게 이겨내보려고 일부러 유쾌한 모습 보이며

관중없을때는 더더욱 외로워지는 그런 1~2년간을 보낸게 아닐까요?

이제는 그런일이 없이 구도 부산의 자이언츠 1번 타자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핌베어백은 정확하게 본 것이다

스포츠 2007.07.15 23:52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핌베어백 감독이 아시안컵 4강에 감독직 건다고 말해서 한번 호되게 당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월드컵 4강국인데 아시안컵 4강에 감독직을 걸다니 우리 축구를 너무 무시한 처사란 이야기죠.

저도 그런 자신감과 긍지가 있었기에 그의 그런 처사를 비난했었습니다만,

사실 상대해서 이겨도 본전인 동남아 국가, 축구 약국들과 경기에서 그리 시원한 경기를 펼치지 못하는 국대 축구팀을 보노라면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만도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를 무시한채 공격을 일삼던 두명의 투지없는 수비수가 원인이었고,

우리의 피니쉬를 방해했던 바레인의 열정적인 수비가 있지만,

사실 이번 결과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너무 창피스럽습니다.

같이 경기를 관전하던 지인과 나눈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경기결과가 나오면 우리가 안심하고 예선을 통과하겠냐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의 결말은 그런 생각하는 사람이 어딧겠냐는 것이겠죠. 그만큼 경기를 관전하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승리를 당연시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핌베어백 감독, 그리고 뉴욕 타임즈 버금가는 언론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이미 언론에서는 바레인을 2:1로 꺾은 인도네시아를 예를 들며

이번 아시안컵은 이변속에서 난전이 계속된다고 하였습니다.

불안한 것이겠죠... 선수들은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축구 대표팀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사람들은 우리가 힘든 경기를 할 것이라고 예측 했을 겁니다.

너무나도 쉬운 경기를 그동안 못했었지 않습니까??

핌베어백 감독의 발언에 강력하게 대응했던 대한 축구 협회도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현실을...

그래도 한국 축구의 자존심은 곧 그들의 자존심인데 어디 "모시고 온 것"이 아닌 "뽑은" 외국 감독이 그딴식으로 우릴 낮게 보냐 그런 거였겠죠.

그런데 그 솔직했던 외국인 감독은 제 생각엔 바르게 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외국인 감독은 너무나도 잘 못 한 부분이 있습니다.

왜?? 수비수를 경험없는 수비수를 계속 쓰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감독 자신이 그렇게 자신없는 팀을 맡게 되었으면 조금이라도 승리할 수 있는 최적의 스쿼드와 전술로 승부를 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를 상대하는 다른 팀은 역습을 위주로 전개해 나갈 것이라는 것은,

제가 축구를 잘 몰라서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인지요??

그리고 그 역습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데는 경험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코너킥 찬스에서 보로에서 활약중이며, 헤딩슛에도 일가견있는 좋은 스트라이커를 무시하고,

단독으로 골키퍼와 경합하던 3번을 단 수비수는,

치고 달려오는 상대 공격수를

옆에 동료 수비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태클로 저지하지 않더군요.

옆에 있던 "황금날개"라는 가당찮은 별명을 가진 수비수는 뻔히 보고 있더군요. 30도의 무더위에 지친건가요?

자신들의 투지없는 플래이 때문에 치명적인 역전골을 허용하고

찬찬히 경기를 풀어가야하는 데도

3번을 단 수비수는 뻥축구로 조급한 마음을 알리더군요. 마치 누가 봐달라는 것 처럼.

거기다가 물을 마시고 물병을 집어던지는 행위를 카메라에 비추게 한 것은,

과연 그 상황에 누가 화를 내야하는 건지 순간 헷갈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이런 경험없는 수비수를 제외하고

시야가 넓고 작은 팀이라도 조율을 해본 수비수를 썼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후반 공격수 교체는 무엇인지요??

433 아니었습니까?

빠르고 활약이 좋던 이천수를 빼고

성향이 비슷한 두 선수를 투입한건

도무지 의문입니다.

그래놓고 또 활약이 미비하다고 언론에 크게 호통칠건지요???

...

어찌됐건... 졌습니다...

곧 A매치 안하기로 소문난 월드컵 개최구장 문수구장에

바레인을 초청해 복수전을 갖겠군요.

A매치에 목마른 지방 축구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찾게되겠지만

아마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축구에 관계된 뭔가가 잘 못 될것이니

관계자분들께서 이글을 보시면 크게 느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 축구를 하는 사람, 우리나라 축구를 보는 사람 입장이 아닌

우리나라 축구를 도와주는 사람이 객관적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핌 베어백 감독은 그저 우리나라 축구를 도와주는 사람이며,

우리나라 축구를 좀더 많이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언론 플래이를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객관적인 이야기고 맞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찬성]내년 프로야구 서머리그 지명타자제 폐지

스포츠 2007.06.22 13:15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팀이 적은 우리나라 리그에서
'서머리그'라는 FA컵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페넌트레이스 성적에 배제되지도 않는 희한한 아이디어가
괜찮은 방향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한달동안 투수가 타격을 한다면 재밌는 볼거리가 될 것 같네요.
아메리칸 리그와 네셔널 리그, 퍼시픽 리그와 센트럴리그가 지명타자제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인터리그를 통해 아메리칸 리그나 퍼시픽 리그의 투수들이 타격을 하는 재미와 비슷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해봅니다.

그나저나 로떼는 여름에 죽쑤는 팀으로 유명한데,,,걱정이 태산이네요;;;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0064472

무릎팍 도사 - 웨인 루니 편

스포츠 2007.06.19 21:39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무릎팍 도사를 TV로 보는 듯한,,,
그림도 정말 잘 그리셨습니다.
http://blog.naver.com/raykidd?Redirect=Log&logNo=30018710910

네이버 스포츠 호세 동영상

스포츠 2007.05.17 18:01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올스타전 출전하고 보내면 안될까요..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video_player&date=20070516&type=hot_clip&id=713

호세. 그가 떠난다.

스포츠 2007.05.11 17:41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2007년 5월 12일. 펠릭스 호세의 퇴출결정 기사가 언론에 공개되었습니다.
구단의 결정을 이해한다는 호세의 기사에는 댓글이 200개 가량 달려있군요.

이맘때 쯤 되면 각 구단들은 선택했던 용병들의 시즌 초반에 낸 성적을 바탕으로
새로운 용병으로 갈아탈까, 계속 유지할까 결정을 하여 떠들석 해집니다.
그런 시기에 "최고의 용병" 찬사를 받던 펠릭스 호세가 퇴출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가장먼저 변명의 여지도 없이 퇴출되었다는 것에는 "롯데가 잘못한 일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펠릭스 호세

이제 우리곁을 떠나는 호세



우선 그가 퇴출이 된 가장 큰 원인인 시즌 초반 성적을 놓고 이야기 해봅니다.
"최고의 용병이다","호세다"라는 인식에서 기대했던 것보다
그냥 시즌초반 뽑은 용병이라는 기준에서 그의 시즌 초반의 성적을 놓고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선 지금 그의 성적은 홈런1 타율 .256 타점 12가 주요 성적입니다.
홈런 1이라는 것이 퇴출이 결정된 가장 큰 원인입니다.
사실 장타를 생산했던 무시무시한 펠릭스호세는 이제 없어졌습니다.
나이 42. 아킬레스 부상 회복이 더뎌진 이유입니다.
하체를 살리지 못하는 스윙으로 인해 장타를 생산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야구 초보자라도 아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작년 시즌 몸무게를 줄이고 날렵한 모습으로 돌아온 호세에게 상체만으로 홈런을 하나라도 쳐냈다는 것은 역시 호세입니다.
그리고 이대호의 동점홈런으로 아시아 최고의 마무리, 오승환의 방어율 0을 박살냈던 그 다음 경기에서
중견수가 잡아낸 호세의 홈런성 타구가 아마도, 호세의 퇴출을 결정 짓는데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봅니다.
임창용의 150직구를 밀어내어 홈런을 만들던 모습을 계속 기대한다면 당연히 퇴출감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야구는 홈런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롯데는 이대호의 홈런 7개로 팀홈런 11개를 유지하는 팀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3위를 마크하고 있습니다.
홈런 1보다 타점 12에 주목했다면 어땠을까요.
호세의 타점 순위는 현재 23위이지만 2타점 적시타 하나만 날려도 당장 11위대로 점프합니다.
롯데 경기를 모두 볼 수 없었던 제가 내리는 결정입니다만,
타점 12점이 그가 늙어버린 때문일까하는 것도 의문입니다.
호세는 보통 5번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그의 앞타석에 들어서는 리그 현존 최고의 타자 이대호의 타점은 21점,
롯데자이언츠의 테이블 세터진의 출루율은 안습입니다.(이승화는 20위대, 정수근, 김주찬 등은 이름도 없습니다.)
3번 타순에서 활약하던 노장 박현승이 득점 19 점으로 2위입니다. 이대호의 타점보다 낮은 수치입니다.
결국 호세 앞에 과연 많은 주자가 있었냐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과연 퇴출 대상이 누가 되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심심치않게 호세를 피하던 상대팀 투수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클런치 상황에서 고의사구는 아니지만, 그에게 당당히 상대하는 투수를 별로 보지 못한거 같습니다.

타율 .256라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현재 KBO에서 나설정도로 심각한 투고타저 상황입니다.
8개 팀으로 이루어진 리그에서 방어율 2점대 선발투수가 10명이 넘습니다.
물론 .256 타율은 리그 순위 30위에도 못드는 성적이지만
4월 성적 믿을게 못된다는 속설과 함께, 경험많은 호세의 타격 테크닉을 믿었으면 어땠을까요.

이제 "호세"라는 이름 값으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사실 호세의 퇴출에서 호세를 변명하기위해 자료를 찾고, 상황을 생각하고 하는 일이 오히려 호세를 욕보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호세가 차지했던 비중을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1982년 창설된 한국프로야구의 창단 맴버인 롯데 자이언츠는 현재 26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롯데에서 호세는 1999년 입단하였습니다.
입단 초기부터 그는, 롯데 자이언츠 역사상 가장 우수한 거포의 모습을 보여주며
한국프로야구 통산 10000번째 홈런을 작렬함으로서 드디어 조금씩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또한 1999년은 1992년 롯데의 우승이후에 사람들에 가슴속에 남아있는 가장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는 항상 호세가 있었습니다.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그의 감동적인 홈런과
대구 구장 난동은 롯데자이언츠와 관련된 팬이나 선수들을 모두 똘똘 뭉치게 하였습니다.
비록 우승에는 실패하였지만 저에게는 시간이 지난 1992년 우승보다 1999년의 감동이 더욱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1999년 롯데

1999년 롯데 클린업 트리오



2001년에도 롯데에서 활약하였지만 경기외적으로 롯데자이언츠는 좋지못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었습니다.
또한 2001시즌은 중위권 싸움이 매우 치열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삼성 배영수를 가격한 일이 있었고
호세는 국내 야구에 발을 붙일 수 없게되며, 호세가 없는 롯데는 중위권 싸움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제공하게 한 선수가 선발 에이스 투수로 뛰는 팀의 우승 확정식을 눈앞에서, 자기 안방과 같은 곳에서 하고 있는데, 곱게 보고 넘어갈 팬이 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저도 동참했습니다만...)

그후로 사실 호세가 없는 롯데 자이언츠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승엽을 육성한 야구사에 큰 공로를 남긴, 롯데 자이언츠의 새로운 감독은 또 다른 이승엽을 육성하려 했던 것인지, 그에게 지도를 받은 선수들은 오히려 헤매는 선수가 더 많아 보였습니다.
결국 롯데구단은 빈약한 타선을 보강하기위해 용병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때 마다 항상 "호세만한..."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구했던 용병중에 남아있는 용병이 누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롯데 뿐만 아니라 다른 구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까지 활약했던 데이비스이외에 용병타자로 누가 아직 남아있습니까...
각기 구단이 용병을 뽑는 능력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용병 자체가 드문 겁니다...
결국 롯데 자이언츠는 KBO의 호세 영구퇴출 규약을 없애고 호세를 다시 영입하기위해 애를 씁니다.
2005년 양상문 감독이 팀을 재정비하자 롯데 구단은 뜬금없는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드디어 호세를 영입하고 롯데와 또다른 애증의 관계인 강병철 감독을 사령탑에 앉힙니다.
그리고 호세는 투고타저 속에서도 홈런 2위로 이인자의 길을 걷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이전의 호세가 아니라는 걸 사람들은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호세와 롯데의 관계는 1999년부터 지금까지 8년간이나 계속 되어왔습니다...
26년의 롯데 역사에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1/3을 지배한 펠릭스 호세.
이제 그가 떠나갑니다.
이제 다른 어떤 선수가 그의 빈자리를 메꾸어줄지 기대하는 것으로
스타를 보내야 하는 것이겠죠.

비록 퇴출선수이지만 롯데에서 환송식이라도 준비해주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

의아해서 “왜 받았냐”고 묻자 이승엽은 “대단한 선수 아니냐.기념으로 한 장 받고 싶었다”며 웃었다.그는 “정말 존경할만한 선수로 흠잡을 데가 없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

===
그런데, 펠릭스 호세(41)는 누구일까.
5년 만에 롯데에 복귀한 호세는 부산 팬들의 뜨거운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1999년과 2001년, 딱 두 시즌 동안 보여준 위력은 그를 '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 반열에 올려놓았다. 호세만큼 국내 언론에 자주 소개된 외국인 선수는 드물다. 그는 부산의 '검은 갈매기'이자 '호세 효과'라는 신조어를 만든 강타자다. 선수들의 사생활을 좀체 다루지 않는 스포츠 보도 관행이 무색하게 '밤의 황제'로도 알려졌다.
그러나 호세가 어떻게 처음 야구를 시작했는지,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성공과 시련을 겪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부산의 스타'이기에 앞서 다섯 아이의 아버지이자,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사상 처음으로 영입한 도미니카공화국 국적의 선수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타율 3할3리를 친 다음해 메이저리그에서 쫓겨나는 시련도 겪었다.
호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주간야구'는 3월16일 부산 사직구장 내 선수 회의실에서 호세를 만났다. 호세가 말하는 호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화제다. 당신은 ‘중남미판 월드시리즈’인 캐러비안시리즈에 도미니카 대표로 뛰었다(1992, 2002, 2003년). WBC와 수준을 비교하면 어떤가.
거의 똑같다고 보면 된다. 시즌이 끝난 뒤 중남미 최고의 선수들이 나라를 대표해 출전한다. 윈터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아 몸 상태도 시즌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미국 WBC 대표팀이 캐러비안시리즈에 나간다면 우승을 장담할 수 있나.
쉽게 말하긴 어렵지만, 힘들 것이다. 미국 선수들은 몸이 아직 만들어져 있지 않다. 후쿠오카에서 한국, 일본 대표팀을 봤다. 그들은 훈련이 잘 돼 있었다. 두 나라가 선전하는 이유는 역시 훈련 때문이다.



호세는 2월25~26일 후쿠오카 야후돔에서 롯데와 WBC 한국 대표팀의 연습경기에 출전했다. 틈나는대로 WBC 경기를 TV로 본다.



-한국 야구는 마이너리그로 치면 더블A인가, 트리플A인가.
무슨 소리냐. 메이저리그 수준이다. WBC에서 한국 선수들은 메이저리그급 플레이를 하고 있다. 이승엽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을 상대로도, 미국을 상대로도 홈런을 쳤다. 내년에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이승엽을 보고 싶다. 수준 차는 거의 없다. 새로운 리그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2001년에 보던 이승엽과 지금 이승엽에 차이가 있던가.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훌륭한 선수다. 좋은 타이밍에서 홈런을 치고 있다. 이승엽은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고, 열심히 야구를 하는 선수다.



지바 롯데 김성근 코치는 "지난해 이승엽은 왼쪽 어깨가 흔들리는 결점을 고쳤다"고 말했다. 그러나 호세는 이승엽의 타격 폼에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삼성 시절 이승엽을 지도했던 박흥식 코치도 "정신적으로 좀 더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지만 당시와 타격 폼에 큰 차이는 없다"며 호세와 같은 평가를 내렸다. 2001년에 비해 오른쪽 다리를 적게 들어올린다는 정도가 차이다. 결국, 지난해 이승엽은 한국에서 가장 좋았을 때 타격폼을 되찾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젠 일 이야기를 하자. 2002년에 롯데와 재계약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
돈 문제였다. 나는 성적 만큼의 대가를 요구했다. 하지만 구단은 "여기는 메이저리그가 아니다"하고 했다. 전임 단장과 이 점에서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다.
-5년 만의 한국 복귀인데 달라진 점이 뭔가.
새로운 선수들이 많아졌다. 한국 야구도 많이 발전했다. WBC를 보면 알 수 있다. 새로운 선수들을 상대로 새로운 야구에 도전한다는 생각이다. 단장도 새 단장이 오지 않았나.
-나이에 대한 우려가 있다.
일본 전지훈련을 잘 소화했다. 체력적인 문제는 전혀 없다. 몸무게도 110kg에서 106kg으로 줄였다. 나는 훈련으로 더 강해졌다.
-개인적으로 목표가 있다면.
플레이오프 진출이다. 다치지만 않는다면 좋은 플레이를 보여 줄 수 있다. 홈런 30개는 넘길 자신이 있다.



호세는 일본 전훈 때 지난해 홈런왕(35개)인 현대 래리 서튼을 만났다. 만남 뒤 구단 관계자에게 "나는 2001년에 117경기만 뛰고 36개를 쳤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하지만 서튼이 자신과 비슷한 119경기에만 뛰었다는 점은 알지 못했다.



-부산이 그리웠나.
정열적인 팬들을 잊지 못한다. 팬들은 나를 수퍼스타로 대접해 줬다. 그 덕분에 편하게 게임을 치렀다. 그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돼 기쁘다. 팬들 덕분에 구단에 불만이 있더라도 말하지 않았다. 훈련도 더 열심히 했다. 부산에서 나는 마치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팬들이 그런 느낌을 선사해줬다.



-2003년부터 마이너리그가 아닌 멕시칸리그에서만 뛴 이유는.
마이너리그는 빅 리그에 도전하려는 젊은이들을 위한 무대다. 수입도 멕시칸리그가 낫다. 물론 연봉은 한국이 더 좋지만 멕시코는 집에서 더 가깝다.
-미국 야구, 중남미 야구, 아시아 야구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야구는 어디에서나 야구다. 큰 차이는 없다. 대륙 별로 약간 다르긴 하다. 가령 미국이나 중남미 투수들은 빠른 모션으로 공을 던진다. 그러나 동양 투수들은 와인드업을 주로 한다. 하지만 작은 차이일 뿐이다. 결국 야구는 똑 같다.



-가족들은 잘 지내나.
아내와는 헤어졌다. 도미니카 출신 걸프렌드가 있다. 집은 플로리다에 있다. 아이들은 모두 다섯 명이다. 제일 큰 애가 열세살이다. 가능하면 올해 한국으로 부르고 싶다. 아이들을 사랑한다.
-마흔이 넘어서까지 야구를 하며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생활을 했다. 여름 뿐 아니라 겨울에도 윈터리그에서 뛰었다. 나쁜 아버지 아닌가.
시즌 사이에는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시즌 중에도 아이들과 자주 전화 통화를 한다. 짬이 날 때마다 집에 들른다. 나는 가장이다. 돈을 벌어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아이들도 이 점을 이해한다. 나는 '호세 스타일'로 좋은 아버지다.



-이제 옛날 이야기를 해 보자. 야구를 어떻게 시작했나.
내 아버지는 야구의 '야' 자(字)도 모르던 분이었다. 가족 중에도 야구를 한 사람은 없었다. 어렸을 때는 체조 선수였다. 야구는 우연히 접했다. 열두살 때였다. 어느날 체조 훈련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친구가 “야구라는 게임이 있다. 한번 보러 가자”고 권했다. 그 뒤로 나는 야구선수가 됐다.
-프로 계약은 언제 했나.
후안 마리찰(도미니카 출신 메이저리그 통산 243승 투수)이 운영하던 야구팀에서 뛰다 열아홉살이던 1984년에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계약했다. 그때는 도미니카에 야구 아카데미가 생기기 전이었다. 오클랜드는 나를 포함해 선수 도미니카의 어린 선수 20명을 애리조나의 스프링캠프로 보냈다. 메이저리그에서 11년을 뛴 루이스 폴로냐가 나와 함께 미국 땅을 밟은 동료다. 그 해 루키 리그(파이오니어 리그)에서 첫 프로 시즌을 맞았다.



애리조나 캠프에서 소년들은 주말에는 도미니카의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기숙사에 수용됐다. 상수도 시설이 없는 빈민가 출신이 대부분이라 집에서 병이 걸려 돌아오는 소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20명 가운데 14명이 기생충 감염 진단을 받았다. 구단은 ‘도미니카 집에서는 물 대신 콜라를 마실 것’이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오클랜드의 첫 도미니카 출신 선수였다. 어려움은 없었나.
큰 어려움은 없었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타향살이한다는 게 고생이라면 고생이었다. 하지만 즐거웠다. 도미니카에서부터 '반드시 미국에서 야구를 할 것'이라는 뜻을 굳히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선수가 될 자신이 있었다. 나와 같이 애리조나에 왔던 친구들은 대부분 중도에서 그만뒀다.
-1984년 계약금은 얼마였나.
4000달러였다.
-중남미 선수들은 지금도 미국이나 아시아계 선수들보다 훨씬 적은 계약금을 받는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나처럼 중남미 출신으로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한 선수들은 드래프트로 입단한 미국 선수들보다 적은 돈을 받는다. 불공평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때 돈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도미니카 동포인 세자르 세데뇨(1970년 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간판 스타. 호세와 같은 산토 도밍고시(市) 출신이다)나 페드로 게레로(올스타에 5회 뽑힌 1980년대 LA 다저스 외야수)를 영웅으로 생각하며 야구를 했다. 언젠가는 세데뇨나 게레로가 뛰는 야구장을 밟고 싶었다.
-1988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을 때 기분은 어땠나.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그해 마이너리그에서 정말 좋은 시즌(트리플A 타코마에서 타율 3할1푼7리, 12홈런, 83타점을 기록했다)을 보냈다. 나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언젠가는 메이저리그에 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경력은 뒷날 멕시코나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는 데 도움이 됐다.



1988년 9월2일 뉴욕 양키스와의 원정경기가 호세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이었다. 이 경기에서 호세는 9회초 대타로 나서 데이브 리게티에게 삼진을 당했다. 첫 안타는 9월14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홈경기에서 기록했다. 7회초 호세 칸세코의 대수비로 출전한 호세는 9회말 선두타자로 나가 우익수 쪽 2루타를 날렸다. 상대 투수는 케빈 브라운이었다.



-1991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이때가 전성기였다고 생각하나.
아, 1991년은 좋은 시즌이었다. 무엇보다 매일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전할 수 있어 행복했다. 하지만 이때가 최고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계속 노력하고 있다. 나이가 많아도 전성기를 누릴 수 있다. 훌리오 프랑코를 보라. 나이가 몇인가.(그는 48세다.)
-1993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트레이드된 뒤 부진했는데.
왼쪽 어깨에 부상이 있었다. 수술을 받았는데 그 뒤로 제 컨디션을 찾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1번과 4번을 쳤으니 나쁜 시즌은 아니었다.
-1994년에 타율 3할3리(99경기)를 기록한 뒤 이듬해 방출됐다. 이유가 뭔가.
힘든 때였다. 파업으로 시즌이 일찍 끝났고, 1995년에도 파업이 이어졌다.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사실, 캔자스시티로 원치 않는 트레이드를 당해 의기소침해 있었다.



방출 이유에 대해 호세는 자세한 설명을 피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호세는 부상 후유증에 시달렸고, 체중 조절에도 실패했다. 수비 불안으로 코칭스태프의 신임을 잃었다. 캔자스시티에는 호세를 대신할 외야 유망주들이 많았다. 호세 대신 들어 온 유망주 가운데는 WBC 미국 대표인 자니 데이먼과 2000, 2003년 LG에서 뛴 브렌트 쿡슨도 있다. 호세는 1997년 멕시칸리그, 1998년 독립리그, 1999년 한국에서 뛰며 메이저리그에서 ‘잊혀진 이름’이 됐다.



-토니 라루사, 화이트 허조그, 조 토레, 밥 분 등 여러 메이저리그 감독 아래서 뛰었다. 감독 평을 한다면.
세인트루이스 시절 토레 감독이 가장 좋았다. 조는 그라운드 안에서나 밖에서나 열정으로 넘치는 사람이었다. 나와도 스타일이 맞았다. 내 야구를 이해하고, 믿어줬다. 다른 감독들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



호세는 1999년 롯데에서 뛴 뒤 2000년 양키스 선수로 5년 만에 메이저리그에 복귀했다. 양키스 감독은 세인트루이스 시절 은사였던 토레였다.



-메이저리그 감독과 한국 감독의 차이는.
한국 감독들은 선수들에게 더 많은 훈련을 시킨다. 훈련 강도도 높다. 한국에서 열심히 훈련한 건 내게 큰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첫 시즌을 보낸 뒤 보다 나은 선수로 발전했음을 느꼈다.



-90년 대 중반까지는 홈런 타자라기 보다는 1번 타자에 더 어울리는 선수였다.
그때는 스트라이크 존을 정확하게 읽고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날리는 타자였다. 오클랜드나 세인트루이스의 홈구장 외야는 매우 넓다.(호세는 두 구장의 외야 펜스 거리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의식적으로 홈런보다는 2루타를 노렸다. 하지만 멕시코나 한국 팬들은 메이저리그 출신인 내게 홈런을 원했다. 홈런 타자가 되기 위해 훈련을 많이 했다.



-인터뷰에 응해 줘 고맙다. 그라시아스(스페인어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한국 말로)

=====================================
호세 관련 기사는 계속 수정하며 업할 계획입니다..

이토록 제가 사는 도시 울산에 살면서 뿌듯한 날이 없을듯합니다.
2005년 K리그 우승을 차지한 울산현대에 이어 오늘 2007년 5월 1일에
울산 모비스 피버스가 정규리그 및 포스트 시즌을 석권하며
명실공히 KBL 최고의 팀으로 등극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직접 경험했다는 사실이 대단히 즐겁습니다.

승패상 우위를 점하다가 부산 KFT의 거센 추격으로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는 결과로
입석까지 매진된 동천체육관의 입장객 행렬이 매우 대단했습니다.
친구가 인터넷 예매를 해둔 덕으로 몰래 등떠밀리듯 새치기하여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그때 뒤에 계셨던 분들 죄송합니다 -__- 꾸벅)

일반석 예매를 하였는데 자리가 없어 관중석 사이 계단에서 보았는데
좌측에 기자석이 있었지요.
앞으로 보시게될 사진에도 기자분들의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기자석

보시다시피 제 옆이 기자석이었습니다. 한때 야구부 기자를 꿈만 꾼적이 있는데 ㅋㅋ 가장 오른쪽 분은 KBS 기자분이신듯.



사진을 올려가며 관전기를 계속 적어보겠습니다.


부산 KTF 응원석

부산에서 온 원정응원단입니다. 코트 쪽 관중석을 완전히 매울정도로 매우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홈팀에 버금가는 응원을 보여주었습니다.


초반부터 모비스는 KTF를 앞서나갔습니다.
시즌동안 저와 저희 친구들에게 그다지 믿음을 주지 못했던 '코트의 지배자'(장내 아나운서가 붙인 별명입니다.) 버지스의 분전과 윌리엄스의 활약 덕분이었지요.
물론 양동근을 빼놓을 수 없겠죠.

울산 모비스 유재학 감독

간만에 보는 유재학 감독의 앉아있는 모습


크리스 윌리엄스 울산 모비스

크리스 윌리엄스의 자유투. 오늘 그의 자유투는 약간 부진했습니다.


버지스 울산 모비스

리바운드를 잡아내는 버지스.


그런데 3쿼터 부터 KTF의 용병 듀오, 리치와 에런 맥기의 활약과 신기성의 스피드로 거센 추격을 받게됩니다.

울산 모비스 vs 부산 KTF

이때 사실 조마조마 했다는;;;


그러나 울산 모비스는 이병석의 끈질긴 수비와 슬그머니 시작된 윌리엄스의 크래이지 모드에 힘입어 리드를 계속 지켜나갑니다.

레이저빔 수비

이병석의 수비는 레이저빔이라도 나갈 것 같았습니다.


울산 모비스 크리스 윌리엄스

드디어 발동걸린 윌리엄스의 크래이지 모드. 그의 블록하는 장면입니다.


윌리엄스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 양동근의 스피드도 리그 최고임을 확신시켰습니다.
그들은 4쿼터를 3분정도 남겨두었을때, KTF의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울산 모비스 벤치

환호하는 모비스의 벤치. 개인적인 바램으로 김효범의 덩크를 챔프결정전에서 보았으면하는...ㅋㅋ


부산 KTF 응원단

KTF의 패배가 현실로 다가오자 KTF응원단은 점점 담담하고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4쿼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선수들은 여유를 가지게 되었고,
그간 대장정의 우수한 결과를 마음껏 즐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울산 모비스

승리가 점점 다가오자 환호하는 울산 모비스 피버스


그리고 드디어 4쿼터의 시간 종료!
울산 모비스는 통합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루어 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크롤과 이미지 압박 속에서 보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못올린 흥미있는 사진들이 많은데 내일이나 다음날 시간내어 정리하여 올릴 생각입니다.

다시한번 챔프 모비스 화이팅!!

커브 부활할까

스포츠 2007.04.30 23:48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간만에 보는 개념 기사.

================================================================
[스포츠2.0 2007-04-26 12:41]    
4월 6일 잠실구장. 양상문 LG 투수코치는 KIA와의 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심수창의 불펜 투구를 지켜보고 있었다. 양코치가 올해의 키워드로 꼽는 단어는 커브(Curve)다. 변화구의 대명사로 불리는 구종이지만 오랫동안 한국프로야구에서 홀대받아왔다.
SK 신인 김광현의 주무기는 높은 타점에서 나오는 커브다.(사진 제공=SK 와이번스)

양코치는 “6,7년 전부터 좋은 커브를 던지는 투수가 드물어졌다”며 “올시즌에 대비해 투수들에게 커브를 연마하라고 주문했다. 우리 팀뿐만이 아니다. 시범경기에서 보니 다른 구단 투수들도 커브를 많이 던지더라”고 말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올해 스트라이크존을 규정대로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변경이 아니라 규정대로라고 강조하지만 지난해에 비해 아래쪽이 길어지고 바깥쪽이 좁아졌다. 이론적으로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을 노리는 슬라이더 투수들은 불리해졌다. 반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를 던지는 투수에게는 유리하다. 각 구단이 커브에 신경을 쓰는 이유다.

오프시즌 LG 전력보강의 핵인 박명환이 바로 그렇다. 박명환의 주무기는 빠른 슬라이더. 박명환은 “내 슬라이더는 세로로 떨어진다. 홈 플레이트 가장자리가 아닌 가운데를 보고 던지기 때문에 스트라이크존의 변화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명환도 새 시즌에 대비해 커브를 가다듬었다. 지난해까지 컷패스트볼을 준비했지만 전지훈련 때는 이보다 커브 컨트롤에 더 집중했다. 롯데 에이스 손민한도 “올해 커브 구사 비율을 높일 것”이라고 말한다.

SK가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신인 김광현의 주무기도 위에서 아래로 크게 떨어지는 커브다. 4월 10일 홈 개막전에서는 지난해 우승팀 삼성을 맞아 4이닝 8안타 3실점으로 부진했지만 커브의 위력은 인정받았다. 그의 커브는 높은 타점에서 큰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느린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잡는 능력도 갖고 있다. 새 외국인선수인 삼성 크리스 윌슨과 한화 세드릭 바워스가 애용하는 변화구도 커브다. 커브의 시대가 다시 돌아오는 것일까.

커브란

커브는 일반적으로 둘째, 셋째 손가락을 모아 실밥을 잡고 어깨, 팔꿈치, 손목에 회전을 넣어 던진다. 실밥을 잡거나 회전을 넣는 방법은 투수마다 다소 다르다. 직구를 던질 때보다 공을 깊게 잡아야 하지만 손바닥에 닿아서는 안 된다. 공이 손바닥에 밀착되면 회전을 넣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커브 볼은 실제로는 휘지 않는다. 착시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예일대 명예교수인 로버트 어데어는 <야구의 물리학>에서 커브의 궤적을 “투수에서 홈플레이트의 중간 지점에 이르렀을 때 공은 타자의 몸쪽을 겨냥했던 원래의 직선 궤도에서 약 8.6cm를 벗어나 플레이트의 중심을 향해 나아간다. 홈플레이트에 이르면 공은 원래 궤도에서 약 36cm를 벗어나 타자의 바깥쪽 구석을 통과한다”고 규명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조 모건은 “뛰어난 커브는 어떤 구종보다도 타자를 손쉽게 삼진으로 잡을 수 있는 공”이라고 말했다.

한국야구와 커브

한국야구는 언제 커브와 만났을까. 아마도 야구가 도입되고 얼마 뒤일 것이다. 커브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변화구 구종이다. 미국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은 1867년 캔디 커밍스라는 투수가 처음 커브를 고안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가설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다. 커밍스 외에 ‘커브의 고안자’로 알려진 선수는 다섯 명이 넘는다. 아마도 커브는 여러 투수들이 여러 그립으로 공을 잡는 가운데 우연히 탄생했을 것이다.

어쨌든 커브가 19세기에 이미 등장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슬라이더가 1920~30년대에 탄생했다는 게 정설이고 보면 커브는 매우 유서깊은 구종이다. 한국에 야구가 도입된 해는 공식적으로 1905년이다. 이미 메이저리그에서는 커브가 보편화됐던 시점이다. 당시의 강속구 투수 월터 존슨은 ‘커브는 비겁한 투구’라고 말했지만 그도 얼마 뒤 커브를 배웠다.

4월 10일 SK김광현의 커브를 MBC ESPN의 카메라가 연속 동작으로 잡았다.(자료 제공=MBC ESPN)

야구인들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커브는 쉽게 볼 수 있는 구종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광환 KBO 육성위원장은 “주한 미군과 경기를 한 게 커브가 본격화된 계기”라고 말했다. 대한야구협회의 전신인 조선야구협회가 창설된 해는 1946년. 야구사에는 그해 8월 11일 경성운동장(동대문야구장)에서 미8군 팀과 ‘조·미친선야구대회’가 열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위원장은 “해방 전까지 한국 야구는 일본야구의 영향 아래 있었다. 당시 투수들은 직구 위주의 교과서적인 피칭을 했다. 반면 미군들은 다양한 변화구와 요즘 말로 체인지 오브 페이스에 능했다. 미군들과 경기를 하며 변화구 구사와 투구의 완급 조절을 전수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커브보다는 힘에 의존하는 피칭이 주류를 이뤘다. 고(故) 장태영은 국가대표팀의 첫 해외 원정이었던 1954년 제1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필리핀)를 이렇게 회상했다. “가와이(河合)였던가. 그런 이름으로 기억되는 일본 투수의 공은 당시로써는 처음 보는 희한한 구종이었다. 나중에야 그것이 슬라이더란 사실을 알게 되었거니와 국내 무대에서는 커브만 해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던 시절이었다.”

이충순 전 한화 투수코치는 “1950년대까지 투수들은 힘에 의존하는 야구를 했다. 1960년대를 거치면서 직구, 커브가 기본 볼 배합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당시 커브를 잘 던졌던 투수로는 1960년대 상업은행과 육군에서 활약했던 김설권을 꼽을 수 있다. 1962년 상업은행 감독으로 김설권을 스카우트한 장태영은 “당시 그의 커브볼은 한국 제일이라 할 만했다”고 평했다. 이위원장도 1960년대 커브의 달인으로 김설권의 이름을 먼저 들었다.

1960년대부터 재일동포들이 한국야구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기업은행 에이스로 활약한 김성근 SK 감독은 시속 140km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강속구에 예리한 각도의 커브를 자랑했다. 한국프로야구에 복귀한 뒤 애제자로 키우고 있는 김광현과 비슷한 스타일로 볼 수 있다.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 출신 김호중도 위력적인 커브를 자랑했다. LG 양코치는 “김호중 선배의 커브는 ‘드롭’이라고 부르는 구종이었다. 휘는 각도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빨랐다. 직구도 좋았다”고 말했다.

드롭은 지금으로 치면 파워 커브와 비슷한 구종이다. 일반적인 커브와 비교하면 수직으로 떨어지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떨어진다는 의미의 ‘드롭(Drop)’이다. 일본식 야구 용어라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커브의 일종이지만 당시에는 커브와 구분해 쓰였다.

그리고 슬라이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때까지 커브는 투수들의 기본 변화구였다. 그러나 도중에 변화가 생겼다. 슬라이더가 도입된 것이다. 한국야구에서 슬라이더의 원조로는 김영덕 전 한화 감독을 꼽을 수 있다. KBO가 펴낸 <한국야구사>는 “대한해운공사 소속 김영덕이 1964년 처음으로 국내에 슬라이더성 구질을 선보였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김영덕은 “아마도 전해인 1963년에 언더핸드 신용균이 국내에서 처음 슬라이더를 던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영덕을 비롯한 재일동포 투수들의 다양한 변화구는 한국야구에 큰 충격이었다. 1964년 김영덕은 255이닝 동안 자책점 9점만 내주며 믿기 어려운 방어율 0.32를 기록했다. 1966년 한국전력 소속으로 실업야구에서 뛴 이충순은 김영덕의 호투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국내 스트라이크존은 일본보다 다소 넓었다. 김영덕 선배가 던져보니 일본에선 볼로 판정되는 공이 스트라이크가 됐다. 슬라이더로 바깥쪽을 마음껏 공략했으니 성적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또 당시에는 공과 배트의 재질이 형편없었다. 공 반발력은 지금보다 훨씬 떨어졌고 배트는 빨랫방망이 수준이었다. 그래서 장타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

1954년 6월 20일 국가대표선수들이 미8군 선발팀과 친선경기를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했다.(한국스포츠사진연구소)

재일동포 투수들이 보여준 변화구는 국내 투수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실업야구 시대였다. 실업 선수들은 야구를 오래 하는 게 손해가 될 수도 있었다. 은퇴를 늦게 하면 어차피 해야 할 회사 업무를 늦은 나이에 시작하기 때문이다. 좋은 성적을 올린다고 해서 월급이 오르지도 않았다. 굳이 새로운 구종을 익힐 이유가 없었다.

여기에 재일동포가 아닌 국내파 투수들도 좋은 성적을 올렸다. 1965년 김영덕은 실업리그에서 방어율 0.91을 기록하고도 국내파 강속구 투수인 유백만(0.90)에게 밀려 타이틀을 내줬다. 그렇다면 왜 실업야구 투수들은 새로운 구종인 슬라이더를 익혔을까. 여기에는 환경의 변화라는 이유가 있다.

1964년부터 실업야구는 페넌트레이스를 도입했다. 경기 수는 연도별로 차이가 있지만 1964년에는 팀당 48경기를 치렀다. 팀당 주력 투수가 세 명이면 많던 시절이었다. 이충순은 슬라이더를 익힌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원래는 직구, 커브 두 구종만 던졌다. 그걸로도 통했으니까 굳이 새 구종을 익힐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우리 팀 경기는 내가 도맡아 던지다시피 했다. 한 번은 더블헤더를 혼자 던진 적도 있다. 경기가 끝나면 팔이 퉁퉁 부어올랐다. 할머니께서 끓인 석유에 적신 수건을 팔에 감아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짓이었다. 내출혈이 일어난 팔은 시원하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데운 셈이었으니.

그러다가 ‘도저히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슬라이더를 익혔다. 그때는 이름도 몰랐다. 실업야구연맹 초청으로 장훈이 뛰었던 도에이 플라이어스의 전 감독이 내한했다. 야구 관계자들이 모여 강의를 들었는데 거기에서 내가 던지는 공이 슬라이더란 걸 알게 됐다. 아마 슬라이더라는 이름은 1970년대에 간혹 중계된 일본프로야구나 메이저리그 중계를 통해 공식 용어가 됐을 것이다.”

팔이 아픈 투수가 왜 슬라이더라는 새로운 구종을 익혔을까. 답은 커브와 슬라이더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낙차가 큰 커브는 기본적으로 헛스윙을 유도하는 구종이다. 슬라이더는 배트의 중심을 비켜가는 ‘맞춰 잡는 구종’이다. 이충순은 투구 수를 아끼기 위해 슬라이더를 익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슬라이더를 배운 뒤 투구수 83개로 완투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슬라이더의 또 다른 이름은 고퍼(Gopher)다. 펜스를 향해 날아간다는 뜻이다. 제대로 꺾이지 않은 슬라이더는 느린 직구에 불과하다. 그래서 슬라이더의 영원한 적은 홈런 타자다. 그러나 당시는 홈런이 매우 드물던 시절이다. 고교야구대회에서 전체 홈런 수가 3,4개이던 시절이다.

실업야구 사상 최고의 홈런왕으로 꼽히는 고(故) 박현식은 자신의 통산 홈런 수를 100개가량으로 추산한 적이 있다. 프로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치다.

프로야구 시대

프로야구 초기에는 슬라이더보다 커브가 대세였다. 원년의 삼성 이선희나 MBC 청룡 하기룡의 주무기는 커브였다. 이듬해 데뷔한 롯데 최동원은 한국 야구 사상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커브로 프로야구를 주름잡았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김용수, 김건우 등이 등장할 무렵 슬라이더가 커브를 앞선다. 1985년 데뷔해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고 투수가 된 선동열의 주무기가 바로 슬라이더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새로운 구종이 등장한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스플리터 계열의 공이다. 해태 차동철의 주무기였던 ‘V직구’가 스플릿핑거드패스트볼(SF볼)이었다. 공을 손가락에 완전히 끼우는 포크볼보다 다소 얕게 잡아 ‘반포크볼’로 불리기도 했다. 이광환 위원장은 “1984년 미국 교육리그에 OB 베어스를 이끌고 참가했다. 이때 SF볼을 처음 배웠다”고 말했다. 이위원장은 그 뒤로 ‘변화는 적지만 범타를 유도할 수 있는 공이 더 유용하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1984년 삼성의 왼손투수 김일융(위)의 커브는 롯데의 오른손 최동원(아래)과 좋은 짝을 이뤘다.(사진 제공=KBO, 롯데 자이언츠)

1990년대로 접어들면 체인지업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투고타저의 가장 큰 요인으로 ‘체인지업’을 꼽는 투수코치들이 많다. 직구와 같은 투구폼에서 나오는 서클체인지업이 주종이지만 스플리터 계열을 체인지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반면 강력한 커브를 던지는 투수들은 줄어들었다. KIA 김진우 정도가 강한 커브를 던진다. 김상엽이나 전성기의 김원형, 박지철 같은 힘있는 커브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민철과 이대진은 강속구와 커브로 타자들을 떨게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커브는 부활할까

현대 김시진 감독은 커브의 부활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전망을 했다. 그는 “커브는 제대로 컨트롤하기 매우 어려운 공”이라며 “좋은 커브를 던지는 투수가 드문 이유는 컨트롤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감독의 애제자는 김수경이다. 김감독은 일본 전지훈련에서 김수경에게 커브를 가르친 적이 있다. 4주일 동안 특별훈련을 했지만 공은 홈플레이트 훨씬 앞에서 패대기쳐졌다고 한다.

이충순은 “구종은 유행을 탄다”며 조심스레 커브의 부활 가능성을 점쳤다. 그는 “사실 투수가 던지는 공의 변화는 한계가 있다. 옆으로 휘거나 아래로 떨어진다. 위로 솟아오르는 듯한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들도 있지만 그런 투수는 드물다”며 “어차피 타자들은 투구에 적응하게 돼 있다. 큰 각도로 떨어지는 커브가 요즘 타자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커브는 슬라이더보다 컨트롤이 어렵다. 지금까지 커브를 70~80% 정도 스트라이크존에 꽂는 투수는 거의 보지 못했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가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자유자재로 던졌다고 꼽는 투수는 최동원과 이선희 정도다.

최근 특히 불펜에 잠수함 투수가 많아지는 현상은 커브의 부활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오버핸드 투수보다 언더핸드 투수는 커브를 컨트롤하기가 쉽다. 강속구 투수가 늘어나는 현상도 눈여겨 봐야 한다. 이광환 위원장은 “좋은 커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강속구 투수가 던지는 커브”라고 답했다. 커브의 진가는 빠른 직구와 짝을 이룰 때 살아난다.

아련한 커브의 향수

지난해는 1993년 이후 가장 낮은 방어율(3.58)이 기록된 시즌이었다. 그러나 특기할 점이 있다. 2005년과 비교할 때 리그 방어율은 4.21에서 3.58로 크게 떨어졌지만 경기당 탈삼진은 6.3개에서 5.8개로 거꾸로 줄었다.

프로야구 원년의 경기당 삼진은 4.0개였다. 1992년에 5.0개로 올랐고 1998년에 6.0개를 넘어섰다. 삼진의 증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힘을 키운 타자들은 홈런을 노리기 시작했다. 홈런 스윙을 하는 타자들은 당연히 삼진이 많다.

지난해 타격 3관왕 이대호는 이렇게 항변한 적이 있다. “내 홈런 수가 적다며 ‘타격 3관왕의 질이 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마음먹고 홈런을 노리지 않았다. 내 삼진 수를 보면 알 수 있다. 다른 슬러거들이 홈런을 치지 못한 게 어떻게 내 책임인가.” 이대호는 역대 가장 낮은 비율로 삼진을 당한 홈런왕이었다.

여기에 불펜에 힘있는 투수들이 늘어났다. 선발로 6이닝을 던지는 투수보다 구원 1, 2이닝을 던지는 투수의 탈삼진 비율이 높다. 이런 조건이라면 극심한 투고타저 시즌이었던 지난해 삼진 수는 늘어났어야 했다. 그러나 그 반대다.

홈런 타자들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게 이유기도 하지만 체인지업의 득세를 이유로 볼 수도 있다. 움직임이 적은 이런 구종은 삼진을 잡아내기 보다는 범타를 유도하려는 목적이 있다. 프로야구 사상 9이닝당 8.5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낸 선발 투수(20경기 이상 선발 등판 기준)는 모두 10명. 이 가운데 상당수는 강력한 커브 또는 아래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삼진 투구로 삼았다. 이대진, 박명환, 정민철, 김진우, 김수경 등이다. 예외라면 왼손 제구력 투수 주형광과 지난해 류현진 정도다.

(SPORTS2.0)

특히 스플리터 계열의 공은 직구 스피드를 점진적으로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충순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투수들의 직구 스피드가 떨어졌다. 스피드건으로 재 보진 않았지만 1960년대 투수들의 공이 더 빨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포크볼’이 주요 구종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때다.

조 모건의 말대로 강력한 직구와 어울린 커브는 최고의 삼진 투구다. 전성기의 박찬호가 그랬고 과거 드와이트 구든이 그랬다. 커브의 속어는 ‘찰리(Charlie)’다. 그러나 구든의 커브에는 ‘찰스 경(Sir Charles)’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커브는 지난해의 ‘히트 상품’인 체인지업을 더 돋보이게 할 수도 있다. ‘효과 속도 이론’을 국내에 소개한 조용빈씨는 “직구와 체인지업만으로는 다양한 효과 구속대를 만드는 게 쉽지 않다. 타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하나 더 주는 것은 투수의 성공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시속 130km대 구속으로 성공하는 투수들은 다양한 변화구를 던지지 않는다. 직구, 체인지업, 커브라는 단순한 패턴으로 롱런한다”고 설명한다.

커브의 부활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야구는 환경 변화에 민감한 스포츠다. 달라진 스트라이크존은 일단 좋은 조건이다. 투수코치들은 스피드보다는 제구력을 성공하는 투수들의 조건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타자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 세우는 위력적인 커브는 팬들의 환호성을 이끌어 낸다. 박찬호의 슬러브는 그렇게 팬들에게 기쁨을 줬다. 힘없이 날아온 커브에 두 눈 뜨고 삼진을 당한 타자는 화가 나겠지만 관중들은 큰 박수를 보낸다.

SK 김원형은 “커브의 매력은 타자를 놀라게 하는 것이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는 타자들을 보면서 묘한 매력과 쾌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꽤 오랫동안 한국프로야구에는 이런 투수들이 드물었다.

SPORTS2.0 제 47호(발행일 04월 16일) 기사

[관람기] 사직구장 첫 장외홈런과 2만관중

스포츠 2007.04.22 22:27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드디어 어제 올시즌 처음으로 사직구장을 찾았습니다.
비가 온다, 황사가 닥친다는 말이 있었지만 꿋꿋하게 사직구장으로 향했죠.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부산시의 교통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경기 시작은 17:00였는데 저희는 대략 17:15분 쯤에 구장내에 발을 딪일 수 있었습니다.

들어서는 즉시 "와~~" 하는 함성이 들려서 재빨리 관람석으로 들어서니,
이대호가 루를 돌고 있는 광경과 좌측 펜스의 관중들의 어수선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홈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공을 들고 좋아하는 관객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장외 홈런이다 뭐다 생각할 시간보다,
그날 빵하나 먹은 탓에 빨리 줄을 서서 후라이드 닭을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닭을 사서 관람석에 앉아서 스코어를 보니 5:0.
제가 사올 닭을 기다리던 친구녀석이 말해주더군요.

사직 첫 장외 홈런이다. 대호가 날려버렸어!

정말 희한하게 발끝에서 머리까지 전류같은게 흐르더군요.

첫 장외홈런... 순간 약간 지나친 생각일 수 도 있겠습니다만,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기리남을 대형타자를 우리 세대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호와 강민호의 홈런으로 1회 시작부터 승기를 잡은 그날,
2만관중은 정말 열광적인 응원을 펼쳤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만관중 파라노마 - 고정으로 두고 찍었어야 하는건데 ^^;;


세번의 걸친 파도 타기 응원은 각각 3번 이상 구장을 회전하였습니다.
파도타기 응원이 흘러가는 것을 보느라 호세가 삼진 당하는 것도 못봤지요 ^^;;

경기 중 찍은 사진을 올려 봅니다.

롯데 손인호

우익수로 선발 출장한 손인호. 원래 투수출신이죠.

롯데 김주찬

금년 주목받고 있는 김주찬. 폭발적인 스피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롯데 펠릭스 호세 검은 갈매기

2루에 진출한 펠릭스 호세. 아킬레스 부상으로 홈런포를 가동하고 있지 못한 상황입니다.

롯데 박기혁

헛손질하는 박기혁. 금년 타격이 하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롯데 이대호

이대호의 파울 치는 장면입니다 ^^;; 좀 빨리 갔으면 홈런포 장면을 잡을 수 있었는데 ㅠㅠ

롯데 이승화

이승화. 이인구와 함께 롯데 좌타를 이끌 재목입니다.

롯데 염종석 염회장

염회장님의 호투하는 모습. 최고 직구 144km/h를 찍으시더군요. 슬라이더 137km/h. 이정도면 완소염이었습니다.

롯데 염종석 염회장

염회장님 한장더~

롯데 자이언츠

크리닝 타임에 몸을 푸는 벤치 선수들. 주형광과 박지철, 정보명이 눈에 띄네요.

롯데 송승준

몸을 풀고 있는 송승준입니다. 롯데 우완정통파 계투가 없어서 김수화가 아닐까 했었죠.

롯데 최경환 허슬플레이

역시 최경환이었습니다. 벤치선수들이 몸을 풀때도 혼자 점퍼를 벗고 있더군요. 그리고 홀로 러닝을 하고 타격연습을 하더군요. 관람석 곳곳에서 "최경환 좀 넣어라~"하는 함성이 들렸습니다.

사직구장

경기 후반 쓰레기 비닐을 나눠주는데 누가 시키지 않아도 비닐을 응원도구로 사용하더군요. 저도 동참하였지요^^

정성훈의 2루타성 타구를 김주찬이 멋진 원바운드 펜스플레이로 잡아낸 뒤, 유격수 박기혁에게 연결하고,
박기혁은 재빨리 2루에 있던 박현승에게 송구해서 2루에서 정성훈을 잡아내는 수비장면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경기 내용도 경기 내용이지만 열광적인 부산팬들의 응원을 체험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퇴장하는 관중들은 마치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관중들 처럼
롯데 자이언츠의 레플리카를 서로 입고,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부산갈매기를 열창하며
마지막까지도 롯데를 응원하며 승리를 만끽하였습니다.
(경기 후 먹은 국밥도 굉장히 맛이 있었습니다. ㅋㅋ)

오늘 롯데가 연장에서 패했는데 역시나 우려대로 계투진의 문제가 원인이었습니다.
프로구단이 이겨야할 이유중 하나는 '응원하는 팬들을 위해서'입니다.
때문에 롯데와 같은 구단은 이겨야할 이유가 더욱 큽니다.
송승준과 최대성, 박석진, 나승현과 같은 계투진의 정비를 통해,
"승리의 롯데"로 열광적인 팬들을  만족시켜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울산 토박이입니다.

때문에 울산현대에 대한 애정이 롯데 자이언츠 만큼 깊죠.
사실 시험기간만 아니었다면 오늘 있었던 대 서울전 경기를 보러 갔을텐데...

울산에는 여러분이 잘아는 울산의 레전드가 될만한 이천수란 선수가 있습니다. 이미 자서전도 하나 썼고... ^^;;
직설적인 화법으로 이리 저리로 많이 욕도 먹는 선수입니다...

오늘 있었던 대 서울전 경기를 마치고 가진 MBC ESPN 인터뷰에서도
귀네슈 감독의 발언에 대한 이천수 선수가 가진 생각을 묻는 질문에
그의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이 드러났습니다....

울산 현대의 골수 팬으로써 이천수 선수의 인터뷰에 대해, 뭐라 밝히기는 조심스럽습니다만...
울산현대의 최고의 선수,, 아울러 K리그 최고의 선수 다운 자신감 넘치는 내용이었지만,
표현하는 방법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전투적인 자세와 공격적인 자세,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모습을 확인했다는 점이 흐믓하네요.
모쪼록 언론에서 좀 가만 놔두길...


롯데 자이언츠의 2007년 프로야구 개막 첫승

스포츠 2007.04.06 22:59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lotte 손민한 이대호 원정유니폼 3연전첫경기유니폼

롯데 투타의 주축. 이대호 손민한. 원정 유니폼으로 롯데는 올해부터 3연전 첫경기의 4번타자와 선발투수에게 사진에 보이는 유니폼을 지급한다.


4월 6일! 드디어 2007년 프로야구가 개막하였습니다.
오늘 롯데는 그들의 홈구장에서 현대 유니콘스를 상대로 시즌 첫경기를 가졌습니다.
사실 펠릭스 호세가 아킬레스 부상으로 인해 빠진 개막 엔트리를 보면, 롯데 타선의 중량감이 확실하게 떨어져 보였습니다.
그리고 팀분위기가 나쁘다고는하나 작년 돌풍을 일으켰던 주축 맴버들이 고스란히 엔트리를 차지하고, 오히려 부진했던 선수들의 복귀로 전력이 더욱 강화된 바있는 현대의 엔트리는 튼실해 보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 롯데는 현대를 상대로 야구의 교과서가 될만한 경기를 가졌습니다.

우선 팀의 에이스이자 리그 최고의 투수 손민한의 능력을 고스란히 보여준 방어,
그리고 7안타 6득점이라는 매우 경제적인 공격이 바로 그 것입니다.
그리고 야구에서 흔히 나타나는 흐름대로 진행이 되었다는 것을 추가 할 수 있겠습니다.

그 교과서적인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4회까지 0의 대결을 펼쳤던 오늘 게임은 선발투수의 고비라는 5회에 상대 선발 컬러웨이를 흔들었습니다.
신임 감독 김시진은 컬러웨이를 6회에 내렸죠. 사실 감독데뷔 첫 경기라 김시진 감독이 욕심을 부린게 화근이지 않았나 합니다.
6회에 1점을 더 주고 신인급 구원을 등판 시켰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군요.
설마 벌써 승부를 단념하고 경험을 쌓게 하는 건지도??

제 판단에서는 컬러웨이에게 그 이닝 정도는 더 맡겼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컬러웨이는 현대 유니콘스의 현재 가장 믿을 수 있는 에이스입니다.
컨디션이 좋지않거나, 다른 어떤 구원투수의 구위가 매우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에이스에게 맡긴 경기는, 그에게 5~6회정도 맡김으로써, 그 경기를 그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팀의 에이스 선발은 그가 등판한 하루는 팀의 하루를 책임지는 영향력이 있어야하고
팀도 그런 영향력을 요구해야한다는 것이, 저의 에이스에 대한 지론입니다.

롯데는 다음회인 6회에 상대에게 얻은 실책이라는 행운과
현대 코칭스태프의 투수교체의 실수라는 행운을 잘 살려
경험이 부족한 상대 투수의 약점을 잘 파고 들고
볼넷을 얻어 주자를 모은다음,
굳이 안타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한점한점 벌었습니다.
아웃 카운트당 한점. 각 팀의 에이스가 맞붙은 게임에서 4점은 사실 큰 점수가 아닐까요?
야구에서 사사구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라고 합니다.
고의사구의 경우는 작전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고육책에 해당하는 것이죠.
히딩크가 그런말을 했다고 합니다. "축구는 실수를 얼마나 줄이느냐에 따라 승부가 난다."
축구나 야구나 다를바 없는 말 같습니다. 아마 SK 김성근 감독도 그런 말을 한 것으로 기억나네요.
상대의 실수를 잘 파고들어간 롯데는 교과서적인 야구를 하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롯데의 에이스는 에이스 다운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안타를 7개를 맞기는 했지만 모두 산발 처리하는 능력은 그대로 교과서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온 임경완은 복귀선수로서 기대되는 모습을 1이닝을 통해 깔끔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올해 4강을 목표로 가을에도 야구하자는 발걸음을 3년째 내딪은 롯데.
오늘 같이 "이기는 야구의 교과서"같은 야구만 계속해준다면 그리 무리 없는 희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조만간 사직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술기운에 써보는 올해(2007년) 야구 순위 1

스포츠 2007.03.24 21:04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작년은 예상가능한 상황에서 돌발 변수가 많아 즐거웠던 시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선 WBC의 영향으로 야구의 열기가 충만해 프로야구의 인기가 급상승 할 것이라는 주위의 예상이 있었고,
그 이전에 주위의 예상은 월드컵의 영향으로 프로야구가 팬들로 부터 주목받지 못할 것이라는 주위의 예상이 있었는데 바로 WBC 선전이 돌발 변수가 되어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WBC선전 이외에도 프로리그를 운영하는 국가중에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수에 비해
그들의 관심사를 쉽사리 접할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수단이 상당히 발전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우려가 불식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프로'라는 것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아이템으로 돈이 되는 가치를 만들어가야 하는데서
아직 그런 인프라가 부족한 현재에서는 돈이 안되었을 수도 있지만요.
그러나 관심은 월드컵은 잊혀졌지만 류현진의 존재는 팬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다는 것에서 여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WBC의 명장 국민감독의 칭호를 듣는 김인식 감독의 팀 한화 이글스의 선전, 강호 삼성의 선전은 누구나 예상 가능했고,
최근 몇달사이 아시안게임 예선에서의 부진때문에 문제점을 제시받고 있는 스몰볼의 현대 유니콘스의 선전과 뚝심야구 두산 베어스의 선전은 예상치 못한 결과 였죠.
그리고 비록 4강에는 들었지만 정통 강호의 포스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기아 타이거즈.
만년 삽질 우리 로떼 자이언츠, 그리고 뭔가 2%로 부족한 SK와 자율 야구에서 방종야구로 변해버린 LG트윈스의 삽질은 예견이 되었었죠.
그중에서 국가대표 에이스와 타격 3관왕을 보유한 로떼가 꼴찌 앞잡이라는 것은 더욱 신비로울 따름입니다.

올해 야구는 작년에 비해서 더욱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삼성과 같은 전통 강호의 포스,
두산이 보여주며 이미 증명까지 끝나버린 뚝심야구의 힘.
그리고 스토브 리그로 전력은 보강되었으나 아직 검증이 되지 않은 SK, LG,
투타의 어느 한부분만이 돋보이는 기타 다른 팀들...

그러나 술기운에 틀릴 것을 확신하고 한번 써봅니다.



일단 1위는 한화.
투수진과 타력이 조화가 있습니다. 관록의 송진우 선수는 자신의 경기 외적인 부분에 큰 힘이 될 것이고
확실한 국내 거포가 있다는 것이 큰 힘입니다. 다만 새로 영입한 용병이 변수입니다. 한화는 데이비스가 있어서 그렇지 용병복이 그리 좋은 팀이 아닙니다.
하지만 투수진의 나이대가 골고루 분포 되어있다는 점, 타선에서는 붙박이 선수를 쓸 수 있다는 점은 팀 플레이가 살아나고 팀 전력이 극대화되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아마도 류현진은 7승은 확실히 하지 싶습니다. 올해 한화의 키플레이어는 류현진과 이도형입니다. 류현진이 이번 시즌에도 잘해야 한화의 투수 세대 교체는 성공했다는 기사를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도형이 3할에 가까운 타율에 20개의 홈런을 때려준다면 타선이 극대화되며 중량감 있는 타선이 될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위 SK
올해는 SK는 새롭게 정립한 자신의 야구를 들고 찾아온 김성근 감독의 첫 팀입니다. 김성근 감독은 날카로운 야구의 대명사 였죠. 그러나 그는 성적을 배제하고 즐거운 야구와 노력하는 야구를 하려고 합니다.
사실 SK의 스포테인먼트인가 하며 내건 슬로건에 해당하는 도전은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고 김성근 감독 개인적으로도 시험적인 부분입니다.
사실 요즘 재정이 곤란한 현대가 그런 슬로건하에 프로축구의 인천 유나이티드와 같은 운영을 했다면, 재정이 어렵고 암울한 구단의 이미지보다도 돈은 없지만 활기찬 구단의 이미지를 가질텐데요.
역시나 배부르고 등따셔야 실험도 할 수 있는 것이겠죠.
SK의 타선은 일단 강력합니다. 호타 준족형의 타자가 많고 거포가 즐비합니다. 또한 타선을 구성하는 주전 선수들의 관록은 상당하여 작전 수행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오히려 작전을 스스로 만들어 경기를 이끌어 나가지 않을 까요 ;-)
문제는 선발입니다. '저 투수는 10승은 확실하다' 혹은 '왠지 10승을 해도 15승 투수와 같은 이미지'의 투수가 눈에 띄지 않습니다.
SK가 그동안 야심차게 영입한 OB->삼성 출신의 김상진,강병규, LG출신의 이상훈은 SK에서 저물었습니다. 제 생각엔 SK가 풍부한 타자 자원으로 강력한 선발을 영입했어야 SK를 확실한 4강후보로 예상하는 야구 관계자도 편하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SK의 키플레이어는 박재홍과 최상덕입니다. 용병은 용병일 뿐입니다. 레이번과 로마노는 언제 떠날지 모릅니다. 결국은 우리나라 투수가 SK 구단의 역사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인 에이스의 자리를 채워야 합니다.
박재홍은 1번으로 기용될 수도 중심타선에서 활약할 수도 있는 다재다능한 선수로 이미 이름이 높습니다. 그가 포문을 여는 입장이든 해결사의 입장이든 SK의 공격은 그가 주도해야한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위 삼성 라이온즈
삼성은 사실 올해 1,2위에 해당되는 전력은 아니라고 봅니다. 타선을 이루던 붙박이 선수들이 모두 노장이 되었고 선발진도 확실하지 못합니다.
선동렬 감독이 추구하는 지키는 야구는 선발 이후의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 야구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선발 투수가 없이는 자칫 초반에 실패로 따라가는 경기양상을 띨 수 있습니다.
운이 좋아 역전을 성공하더라도 그 것을 지키는 것은 적절한 투수 운용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운용이 사람이 하는 일인데 매번 성공하리라고 장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 타선은 약해졌다고 밖에 생각 할 수 없습니다. 확실한 1번타자로 기용해야할 박한이가 중심타선에 들어온다는 것은 공격을 시작하는 방법을 잃어버린채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군요.
또한 마무리와 선발 중에 아직 확실하게 보직을 결정하지 못하는 임창용과 네임밸류가 부족한 임동규,안지만, 특정팀에만 강한 모습을 보이는 전병호, 부상으로 자칫 불운의 에이스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는 배영수로 꾸려질 선발진은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합니다.
하지만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가 될 오승환과 역사상 최고의 셋업맨이 될 권오준, 좌완 스페셜리스트 권혁으로 대표되는 중간계투는, 선동렬 감독의 투수 운용에 자칫 있을 실수를 최소화하며 삼성라이온즈를 3위로 이끌 것입니다.
삼성의 키플래이어는 신명철과 윌슨입니다. 삼성은 이미 선발에서 임창용, 중간에서 권오준, 마무리에서 오승환으로 한 경기는 그냥 누가봐도 이길 수 있는 마운드가 구축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다음 경기를 이기고 그 흐름을 이어나가는 것이겠죠. 그래서 윌슨의 활약은 삼성이 리그를 지배해 나가는데에 있어서 가장 큰 변수가 됩니다.
제가 롯데 골수 팬이라 신명철을 뽑은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그는 빠르고 시즌에 두자리수의 홈런과 5개이상의 3루타를 칠 수 있는 선수입니다.
또한 그는 공격적인 선수가 잘 나오지않는 2루수라는 포지션입니다. 모든 상황은 준비되어있습니다.
그가 공격에서 선두타자나 그 뒤에 위치해 활약 해주느냐에 따라 삼성의 중심타선은 강해지기 마련입니다. 박한이는 편안한 마음으로 진정한 5툴 플레이를 펼칠 수 있을 것이며, 심정수의 실수도 양준혁의 안타로 어느정도 무마될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4위 롯데
객관적으로 롯데는 강력한 전력을 보유했습니다. 5명으로 꾸려진 선발 마운드는 국가대표급입니다.
손민한이라는 현존 국내 최고의 에이스를 필두로 30억 FA 이상목, 마이너 2점대 방어율에 빛나는 최향남, 양상문 전감독의 두번째 대작 장원준, 5선발은 6이닝 에이스 염종석 선수입니다.
그 외에도 선발자원이 넘쳐납니다. 모두들 10승을 기록 할 수 있는 역량이 있습니다.
이들이 도합 10승만 하여도 50승입니다. 작년 7위 롯데의 승수는 50승이었습니다. 이미 못해도 작년만큼은 할 기본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타선도 젊은 타자들 중 눈을 뜨는 타자가 있습니다. 이인구, 황성용, 정보명, 강민호 입니다. 사실 김주찬을 많이 거론하는데 이인구와 황성용, 정보명, 강민호의 작년 시즌을 이어온 흐름은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대호와 호세로 이어지는 4,5번은 일단 8개구단중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 아마추어와 프로의 중간점에서 오락가락하는 젊은 선수들이 너무 많다는 점,
너무 지고만 살았다는 점, 원정 경기를 치루는 어려움은 롯데의 많은 승리를 보장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올해 롯데의 키플레이어는 김문호와 김수화입니다. 김문호는 롯데가 고민하는 3번타자에 가장 이상적인 경력과 하드웨어를 가진 선수 입니다.
우선 그의 출발은 좋았습니다. 지난 시즌 몇경기 뛰지는 않았지만 3할로 마쳤고 시범경기에서는 끝내기 포라는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롯데가 그동안 수급했던 수많은 유망주 중 이제는 성공작이 배출 될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개인적인 성공은 롯데의 성공과 결국 연관됩니다. 그 성공의 내용은 신명철에게 기대한 5툴 플레이어 3번타자!
김수화가 제몫을 해주면 이미 굳어진 선발 로테이션은 더욱 공고해집니다. 5명 개인당 요구치인 10승을 확실히 달성할 수 있습니다. 김수화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요구치는 8승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5~8위 예상은 두번째 글에서... 그나저나 두번째 글을 쓰려면 또 술을 마셔야 하는데...

추신수 인터뷰...

스포츠 2007.03.24 02:48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추신수 인터뷰... 글쎄... 내가 인터뷰 했어도 정말 비슷하게 인터뷰 했을듯... 나의 입장에서 적어본다...
내가 적는건 비꼬는 의미에서 하는거 절대 아님!!

===================================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로 가는 길은 언뜻 보기에는 투수보다 타자가 힘들어 보입니다. 물론 빅리그 진출을 노리는 한국 선수들의 대부분이 투수들이었고, 성공한 선수들도 모두 투수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투수와 타자의 길을 놓고 선택의 기로에서 타자를 택한 선수가 바로 추신수(25)입니다. 당초 그를 투수로 주목했던 시애틀 마리너스가 엄청난 장타력에 반해 전향을 권했고, 발군의 좌완 투수의 꿈은 빅리그의 거포의 꿈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이제는 중장거리 타자로 그리고 발군의 수비와 스피드, 강한 어깨를 지닌 전천후 선수로 빅리그 진입을 노리고 있는 추신수(25ㆍ클리블랜디 인디언스)는 노장들의 틈새에서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해야할지도 모르지만 한국인 타자로는 처음으로 빅리그에서 확실히 자리를 굳힐 가능성이 높은 추신수의 10문10답입니다.

1. 지난 시즌 가장 행복했던 일

야구를 하면서 가장 오래 메이저리그 생활을 해 봤다는 것. 그전에는 시애틀에서 잠깐 잠깐 빅리그에서 뛰어 봤지만 작년 후반기에는 클리블랜드로 이적하면서 많은 출전 기회도 있었고 정말 행복했습니다.

===============================
동호형한테 랩실에 들어오라고 권유 받았던 일. 내 생은 그때부터 전환기를 맞은 듯.


2. 지난 시즌 가장 어렵고 속상했던 일

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셨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으셨지만 여전히 많이 안 좋으시거든요. 항상 부모님은 자식들만 위해서 사시는 분들인데 고생하시니까 빨리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아버지가 아프셨던 것이 제일 마음이 아팠습니다.
=============================
내곁에 나를 따끔하게 이야기해주는 친구가 없었던 것.


3. 올해 가장 이루고 싶은 일

어떤 기록보다는 자리를 확실히 잡는 것입니다. 붙박이 외야수로 뛰는 것이 올 시즌의 꿈입니다. 당장은 상황이 힘들지만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교수님께 확실하게 연구실의 일원으로 인정 받는 것. 랩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리더로써 역량을 인정 받는 것.


4.꼭 뛰어보고 싶은 팀이 있다면.

솔직히 그런 팀은 없습니다. 시애틀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는 거기서 끝을 내고 싶었고,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구란 비지니스니까 또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항상 몸담고 있는 곳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뜁니다.
=============================
다른 랩실은 갈 수도 없고 가고 싶지도 않다.


5. 선수로 가장 원하는 꿈의 순간

어떤 한 순간보다는 제일 큰 부분은 나의 명예와 이름이 크게 나는 것이 좋습니다. 수많은 나라에서 최고라는 선수들이 모여서 여기서 뛰고 있는데 야구를 그만 두고 나서 팬들이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어떤 한 순간의 꿈보다는 그것이 나의 최고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
우리 연구실의 연구 분야인 분산 프로그래밍과 협업 시스템 구축 분야에 대한 전문가가 되고 싶다.
너무나 추상적인 분야라 세부적으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의 어떤 곳에서는 내가 없으면
할 수 없다는 인상을 심고 싶다.


6. 야구 선수로서 본인에게 가장 만족한 점.

항상 배우려고 한다는 점 같습니다. 예전에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으면 묻고 배운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러나 생각도 많이 바뀌고 배운다는 것이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슈퍼스타가 된다고 해도 야구는 계속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말 배운다는 자세는 중요하다. 난 지금도 랩실의 막내다. 항상 형님들께 배울점을 찾는다.
그리고 친구들을 사귈때 항상 나보다 뛰어난 점을 먼저 알고 사귄다.
내 밑으로 누가 들어온다고 해도 나는 그에게 분명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만족하는 점은 추신수 선수에 비해서 하나 더 있다. 내가 속한 팀에 대한 자부심.


7. 야구 선수로서 본인에게 가장 불만족한 점

지나친 욕심과 승부욕. 그게 단점이 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이길 부분만 이기면 되는데 때로는 사소한 부분까지 너무 승부욕과 욕심을 내는 편입니다. 코치도 좋은 것이 있으면 나만 가르쳐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니까요.(웃음)
=============================
정말 동감한다. 그러나 그런건 너무나 지나친 욕심일 뿐.


8. 한 달간 휴가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이에 안 맞는지 모르지만 난 재미없는 사람입니다. 휴가가 주어진다면 아마 쉬면서 그냥 집에 있을 겁니다. 쉬고, 자고, 컴퓨터나 조금 하고 야구 훈련하고....... 그게 문제입니다. 야구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
=============================
로맨스를 즐기고 싶다. 잠은 지난 겨울방학때 충분히 잤고,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찾고 싶다.


9. 다시 태어나면 하고 싶은 일

또 야구를 할 겁니다. 어렸을 때는 오히려 야구가 진짜 하고 싶다 그런 것이 없었는데 할수록 야구가 너무 좋습니다.
=============================
좀 더 건강히 태어나 야구를 하고 싶다. 아니면 대입 준비를 확실히하며 컴퓨터 공부를 확실히 하고 싶다.
야구만큼이나 프로그래밍이라는 분야는 나에게 너무나 매혹적이며,
1cm의 오차도 없이 필요한 부분에 적절한 속도와 각도로 꼿아넣는 투구를 받아치며 홈런으로 연결하는
야구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10. 야구 생애가 끝나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때까지 부모님이 살아계시기를 바라고 가족들을 위해 살 것입니다. 온 가족이 어려서부터 나만 보고 살았습니다. 집사람도 이제 스물 세 살의 나이에 일찍 결혼해서 미국에 친구도 없는데 와서 나와 아기를 보살피고 희생하고 있습니다. 야구를 그만두면 죽을 때까지 가족들을 위해서 살고 싶습니다.
=============================
나는 정말 적어도 우리 어머니가 아는 사람들 속에서는 떳떳한 직장을 가지고 싶다.
우리 부모님들은 건강을 많이 생각하셔서 살아계시는 정도 까지 걱정은 없지만 좋은 직장 좋은 아내 만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그리고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내 모든 것을 바치고 싶다.

▶◀ 고 박동희 선수의 명복을 빕니다.

스포츠 2007.03.22 23:04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http://sports.kbs.co.kr/article/baseball/200703/20070322/1321944.html

부산고 역대 최고의 부동의 에이스.

롯데 자이언츠 V2의 일등공신. (플레이오프 2승1세이브)

최고 155km/h의 돌직구를 뿌리는 이슈 메이커.

롯데 자이언츠 역사상 유일한 확실한 마무리.

그의 명복을 빕니다.

퍼거슨 감독 구설수… TV 리포터에 욕설

스포츠 2007.03.22 22:59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욕도 좀 하고 해야 애들이 함부러 안굴지. 잘했소 퍼기경!

사용자 삽입 이미지

TV 리포터를 향한 욕설이 공개된 알렉스 퍼거슨 감독

'헤어 드라이어'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다시 입도마에 올랐다. 이번에는 방송 관계자에게 험한 욕설을 퍼부으며 영국 타블로이드 지의 1면을 장식했다.

<더 선>은 21일 단독 보도를 통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퍼거슨 감독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한 TV 리포터에게 욕설을 했다고 보도했다.

퍼거슨 감독에게 직격탄을 맞은 주인공은 <스카이>의 리포터 조프 스리브스다. 그는 지난 20일 있었던 맨유와 미들즈브러의 FA컵 8강전 재경기 이후 호날두가 페널티킥을 얻은 것이 시뮬레이션 액션이었다며 강하게 비판한 인물이다.

특히 그는 경기 후 선수들이 대기실로 향하는 과정에서 호날두에게 페널티 킥이 속임수가 아니었냐라며 질문을 퍼부었다. 이에 심기가 불편해진 퍼거슨 감독은 그가 자신에게 접근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욕설을 퍼부으며 내쫓았다.

<더 선>은 기사 말미에 스리브스와 퍼거슨 감독의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스리브스가 질문을 하려고 하자 퍼거슨 감독은 “개자식”이라며 욕설을 날렸다. 계속된 욕설에 스리브스가 “욕은 하지 마라. 프로답게 인터뷰에 응하라”고 하자 퍼거슨 감독은 “그래, 네가 잘난 프로다. 세상에서 네가 최고다”라고 응수한 뒤 떠나버렸다.

비록 타블로이드 지의 기사 내용이지만 당시 정황에 대한 묘사와 대화 내용이 자세하게 보도된 탓에 영국 현지에서 뜨거운 반응이 일고 있다. 에이전트인 자신의 아들에 대한 비판적 방송이 나간 뒤 BBC와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퍼거슨 감독은 과거부터 맨유 소속 선수를 비판하는 언론에 강하게 대응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서호정 기자

사진=TV 리포터를 향한 욕설이 공개된 알렉스 퍼거슨 감독 ⓒGettyImages/멀티비츠/나비뉴스/스포탈코리아

- 깊이가 다른 축구전문 뉴스 스포탈 코리아(Copyright ⓒ 스포탈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서재응 블로그도 있었네...

스포츠 2007.03.22 00:04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http://blog.naver.com/mlb_seo/

네이버 스포츠의 사진 찍는 센스

스포츠 2007.03.21 23:20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같은 학교 같은 과를 다니는 저의 절친한 친구와 저는 네이버 스포츠에서 기사를 읽고 그 전날이나 그날 올라온 기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깁니다.

네이버 기사도 기사 나름이지만 헤드라인 기사와 함께 뜨는 사진을 보며 감탄하며 즐거워 할때가 자주 있습니다.

어떻게 헤드라인 기사를 그렇게 부각 시킬 수 있는지
또 사진 한장에 여러가지 메시지를 던져주는데 감탄 할 수 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오늘 3월 21일 오후 11시 5분에 네이버 스포츠 국내축구란에 헤드라인 기사 제목과 사진입니다.

박주영 '3골'…서울, 수원에 대승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 있었던 K리그 경기에서 그동안 국대 선발에서 제외되고, '천재'라는 과중한 부담때문에 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박주영이 강적 수원 삼성을 상대로 헤트트릭을 기록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박주영의 활짝웃는 모습 앞에는 정모 선수가 있고 그 앞의 오른쪽에 수원 삼성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안정환의 허탈한 모습이 보입니다.

아마도 제 생각엔 정모 선수는 머리모양과 박주영보다 큰 키로 봐서 (박주영 키 180cm를 넘습니다.) 정조국으로 생각됩니다. 정조국은 국대 경기에 나와서 초반 약간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출장이 뜸하죠.

안정환은 해외진출과 국내잔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무적생활을 6개월간 겪고 수원 삼성으로 복귀해 시즌 초반 놀라운 골 감각을 보여, '역시 안정환이다'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또한 핌 베어백 감독은 언론을 통해 안정환의 대표팀 복귀에 대해 언질도 했죠.

그러한 흐름이 이번 경기에서 역전 되었다는 메시지를 사진에서 보여주는게 아닌 가 합니다.
뭐 물론 꿈보다 해몽이라고 하지만요. 키득.

또한 서울 대 수원의 경기는 K리그에서 손 꼽히는 큰 경기입니다. 재계 라이벌간의 경기이고 (프로야구에서 삼성과 LG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고 있죠.) 실질적인 K리그의 전통 강호간의 경기였습니다.

팬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커다란 경기에서 팀의 간판 공격수들의 상반된 활약을 더욱 부각 시켜주는 이 사진을 보고 내일 또 친구와 함께 즐거운 담화를 나누어야겠습니다.

롯데 '캡틴' 손민한 "올해는 나보다 팀이 우선"

스포츠 2007.03.07 12:39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누가 뭐래도 내 시대 최고의 에이스는 손민한이다.

============================================
롯데 '캡틴' 손민한 "올해는 나보다 팀이 우선"
[조이뉴스24 2007-03-07 10:43]    

<조이뉴스24>

두 차례의 다승왕, 평균 자책점왕, 정규 시즌 최우수 선수(MVP), 골든 글러브 그리고 '전국구 에이스'라는 최고의 수식어까지.

더이상 오를 곳이 없어 보이는 롯데 손민한(32)의 올 시즌 목표는 무엇일까. 손민한은 주저 없이 "올 시즌에 주장을 맡았다. 나보다는 팀이 잘 되는 게 올해 가장 큰 목표다"고 말했다.

손민한은 지난 2005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그러나 언제나 자신의 이름 앞에 따라 다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팀에서 배출한'이란 표현은 아쉽기만 했다.

평소에도 성적 뿐만 아니라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후배들이 잘 따르는 손민한은 올해 주장 완장까지 찼다. 제대로 한번 팀을 이끌어 볼 생각이다. 손민한은 "주변에서는 투수인데 주장을 맡았다며 걱정하기도 하지만 정작 나는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목표는 일단 '두자릿수 승리 올리기'로 잡았다. '전국구 에이스' 손민한으로서는 소박하기만 하다. 하지만 손민한은 "큰 욕심 내지 않고 두자리 승수를 올려 선발 투수로 제몫을 다하겠다. 정말 중요한 것은 팀을 제대로 이끄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두자릿수 승리를 올리기 위해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커브다. 올해는 무엇보다 스트라이크 존이 좌우로 좁아지고 상하는 넓어져 낙차 큰 커브는 더욱 중요해졌다.

손민한은 "지금 와서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기보다는 늘 해오던 커브를 좀더 완벽하게 가다듬고 싶다. 매년 좀더 나은 커브를 던지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체력 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해는 시즌 초반 예상치 못한 맹장염 수술로 스타트가 늦어졌다. 게다가 시즌이 끝난 뒤 12월과 올 1월까지 두달 가까이 지독한 감기로 고생했다.

손민한은 "부상 보다 오히려 더 힘들었다"며 "평소 건강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체력을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컨디션은 최고다. 손민한은 "당장 경기해도 될 만큼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평균 100개 이상 공을 던질 정도로 좋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롯데의 상징이자 후배들의 정신적 지주인 손민한. 그의 양쪽 어깨에 '가을에도 야구하자'는 부산 갈매기들의 간절한 염원이 달려있다.

/최정희기자 smile@joynews24.com

IT는 아이뉴스24, 연예스포츠는 조이뉴스24

(Copyright ⓒ 조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뽀샵을 적절히 사용하는 MLB...

스포츠 2007.02.11 17:56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뭐 별거 아니지만 선수 이적때마다 mlb.com의 모자 유니폼 뽀샵질이 기대가 되기도 한다...

예전에 다저스에서 뛰었던 이시이의 메츠 이적때였나...

뽀샵합성은 정말 이시이의 머리 모양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시이의 머리 모양이 드래곤볼의 셀이 아닐까 할정도로 언밸런스한 모자를 갖다가 붙여놨던데...

다행히 찬호히야의 합성은 그정도는 아니군...

Mets looking to fill out rotation - 메츠 박찬호 영입기사

스포츠 2007.02.10 22:30 Posted by soulfree >동네청년<
02/09/2007 7:00 PM ET
Mets looking to fill out rotation
Park the latest addition to large stable of camp-bound pitchers
tickets for any Major League Baseball game
Chan Ho Park went 7-7 with a 4.81 ERA in 24 games (21 starts) with the Padres in 2006. (Lenny Ignelzi/AP)
ADVERTISEMENT

NEW YORK -- Pitchers and catchers is what they call it now. For the Mets, it's pitchers and pitchers. And pitchers and pitchers, with the occasional catcher. With the addition of Chan Ho Park, the roster of pitchers for the Spring Training camp includes 32 names. The catchers number merely eight, most of them invited to camp so the glut of pitchers can be accommodated. The term 40-man roster assumes a different meaning for the Mets.

Among the 40 are one man who may already have turned 40, another who will turn 41 before camp ends and young arms whose statistical resumes don't approach the achievements of Tom Glavine. Mike Pelfrey is the most prominent among them, as well as the one most likely to join Glavine, Orlando Hernandez, John Maine and Oliver Perez in the Opening Day rotation.

The Mets won't even publicly acknowledge Maine as the likely No. 3 starter, strange because they speak of Oliver Perez as if he were a lock for a rotation slot and for 15 victories. No matter, Maine and Oliver can't fill more than voids in the projected rotation, and, even with the signing of Park to a one-year, $600,000 contract, Pelfrey appears to be the favorite for the fifth assignment.

In one way, the Mets need Pelfrey to win it; they need to get younger in the rotation even if Maine and Perez, both 25, are parts of it. Glavine, 41 next month, and El Duque, his birth certificate open to interpretation, are closing in on retirement. The club must establish at least one young starter this year.

The scouting and player departments would like two -- Pelfrey and Philip Humber preferably -- as a means of validating their drafts of 2005 (Pelfrey) and 2004 (Humber) and the efforts made since then with each.

"I've seen that in other organizations, guys pushing young drafted pitchers," general manager Omar Minaya said Thursday. "That won't happen here. We're about winning first."

Moreover, the Mets' plans for 2007 include a return to the postseason. And if Pelfrey and Humber were factors in those plans from the beginning of the season, they might be worn down before Sept. 1. Neither has pitched 200 innings as a professional. Neither is accustomed to the workload a big-league starter handles.

With the club pointing to the postseason, 2007 isn't the year for both to learn. The Mets of 1984 -- with Dwight Gooden and Ron Darling making 31 and 33 starts -- had two rookie starters as regular contributors and won 90 games. The Yankees of 1986 had rookies Doug Drabek (21 starts) and Bob Tewksbury (20) and won 90 games. And the Giants of 2003 had rookies Jesse Foppert (21) and Jerome Williams (21), and won 100 games and a division title.

Spring Training

They were exceptions, though. None of those teams entered those seasons as the Mets enter 2007, as defending division champions and favorites.

"How Pelfrey and Humber will react to pitching more innings," Minaya said, "is something we have to look at."

The general manager acknowledged the chance of both being in the Opening Day rotation is remote.

Less than a day after that acknowledgement, the Mets made the possibility less likely, signing Park, the 33-year-old right-handed veteran of 12 seasons and 274 starts in the big leagues. Park has gone 33-33 since leaving the Dodgers following the 2002 season.

"We are happy to add a veteran pitcher like Chan Ho to our staff," Minaya said in a statement. "As we approach spring training he certainly gives Willie Randolph and Rick Peterson another option to consider as we put together our rotation."

Less than a day after that acknowledgement, the Mets made the possibility less likely by signing Park, the 33-year-old right-handed veteran of 12 seasons and 274 starts in the big leagues. The Mets signed veteran pitcher Aaron Sele to a Minor League contract two weeks ago.

And if none of it works out, Minaya said, he could again lean on the Wilpon treasury to reinforce the team come midsummer.

"We do have some money left for the All-Star break," Minaya said. "I hope we're in position to be able to use that."

Marty Noble is a reporter for MLB.com. This story was not subject to the approval of Major League Baseball or its clubs.